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종전 협상 과정에서 동맹 없는 우크라이나가 겪는 고통과 수모를 지켜보면서,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이 과연 존재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안보를 보증했기에 경제개발에 매진하고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용으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꺼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반도와 미군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관세 폭탄’과 같은 일종의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일지도 모른다. 국제정치학 사전에까지 나오는 이 전략은 사실 고도의 이성적 협상 전략인데, 아이러니하게 그 원전이 이승만 전(前) 대통령이란 속설이 있다.
얘기는, 6·25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1953년 6월 18일 이 전 대통령이 세계를 경악시킨 일을 벌인 데서 시작된다. 유엔군에 통보도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사건이다. 이때 미국은 그를 미친×라 분노하며 제거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이런 강수를 둔 건 당시 함께 논의되던 한미동맹을 미국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 10월 1일 한미동맹이 체결되자 미국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이 이를 기념하려고 서울을 찾았다. 그를 만난 이 전 대통령은 수개월 전에 있었던 그 일을 들춰내며 그게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훈수했다. 1961년 1월 제37대 미국 대통령이 된 닉슨이 베트남전 초기에 북베트남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소련을 상대로 이 전략을 사용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최근 주한미군 위상을 두고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월 “미군을 아끼면서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존 케인 미 합참의장 지명자는 1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일본과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규모를 재평가할 것이라며 부통령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지난달에는 주한미군 운용 패트리엇 포대 일부를 중동으로 옮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 운용 조정을 공식화한 후 나타난 첫 조치라는 점에서, 주한미군 규모나 역할 변화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백악관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방위비 증액과 주한미군 주둔, 상호 관세 등을 포괄적으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순히 ‘미치광이 전략’의 일환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다.
지난달에 미국 국방부가 내부용으로 배포한 ‘잠정 국방전략 지침’에는 최우선 과제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국 본토 방어’가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억제는 주한미군이 할 테니, 북한 억제는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최후통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도 한다. 미국 해외전투사령부 축소와 함께 주일미군 확대 중단 및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다. 숫자보다는 존재 자체가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력을 가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러-우 전쟁이,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채 냉전의 유산인 남북 대치와 북핵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핵심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친× 소리까지 들으면서 얻어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만큼은 외교·안보 자산을 총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원문출처>
문화일보 https://www.munhwa.com/article/11498368?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