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
봄이 눈 앞에 다가왔고, 대학교는 개강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의과대학과 의대생들이다. 신입생은 선발됐지만, 언제부터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난해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복학할지도 미지수다. 전공의들이 떠난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의정 갈등이 1년이 지났지만, 진전은커녕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의정 갈등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의료 소비자, 즉 환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지불한 소비자가 여전히 큰 소리 치지 못하는 곳이 의료와 교육 현장이다. 공교롭게도 의대 문제는 이 두 가지가 겹쳐져 더더욱 소비자는 눈치만 보고 있다. 이미 많은 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응급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지 불안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건강보험료와 진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의료계 어느 쪽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언젠가 타협점을 이룬다면 의료 소비자는 제외한 채, 동의도 받지 않고 정해질 확률이 높다. 그것도 과잉진료나 3분 진료와 같은 문제의 해결책이나 확답도 없이.
우선 이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보건의료기본법은 '모든 환자는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제6조)'와 '모든 국민은 건강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제10조)'를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실현할 책임이 있다. 국민이 보건의료에 관한 의무로서 비용부담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에도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뢰회복과 대화 재개가 급선무다. 현재 의사와 정부간 대화가 단절된 중요한 이유는 신뢰의 상실이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며, 대화의 파트너 교체도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향후에는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과 정책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보건 영역을 독립시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통합해 질병관리청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조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의대생의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정립이다. 실체도 알 수 없는 소수의 강성 일변도의 강압과 눈총에 인생의 중요한 1~2년을 맡기고 있다. MZ 엘리트답게 자율적, 합리적 선택을 요구하고 보장받는 것이 필요하다. 전공의와 의사협회는 순차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세 번째는 환자 부담비용을 포함한 영향평가 도입이다. 모든 정책에는 비용이 수반되며, 이에 대한 재원 조달 방식과 부담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SOC, 교육, 교통, 환경 등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제도화되었지만, 정작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논의조차 없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장기화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손해를 자신이 보상 또는 배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환자나 국민들에게 보험료와 진료비, 세금으로 전가할 것이라는 것을 전문가들은 모두 알지만 침묵할 뿐이다.
위에서 제시한 대안들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의료 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모든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내가 손해배상을 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의료는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더 이상의 갈등은 국민의 희생만 초래할 뿐이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
<원문출처>
전자신문 https://www.etnews.com/2025030500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