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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개봉된 영화 ‘어퓨굿맨’은 형량을 사전 조정해 6개월 복역으로 끝내자는 변호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해병으로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중형 선고의 위험이 큰 재판을 선택하는 도슨 일병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숨겨진 진실이 밝혀져 실형 없이 불명예 제대하지만, 그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으로 진정한 명예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군인은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긴다. 제복을 입은 자신과 전우의 모습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유사시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 군인복무규율이 명시하고 있는 군인의 자세 중 제1 규범이 ‘명예의 존중’이다. 헌법 제5조에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군인의 사명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때 제복의 명예와 신뢰가 지켜진다.

군인 명예와 군사기밀은 지켜져야.jpg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장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은 이런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제복을 입은 군인이 항공기 탑승 수속을 할 때 편의를 제공한다든가, 지나갈 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휴가 나온 군인의 커피값이나 식사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소식을 간간이 접할 수 있어 뿌듯하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이에 따른 국회 청문 및 수사 진행 과정에서 군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계엄령에 동원되었거나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아 수사 대상이 된 장군들의 별만 합쳐도 벌써 13개다. 장군을 지칭하는 제너럴(general)은 모든 병과의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 중의 으뜸’이라는 의미이다. 실망스러운 것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지닌 이들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밤낮없이 국토방위에 매진하는 절대다수의 군인들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사기가 떨어지는 거 같아 안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군사기밀 유출이다. 계엄사령관이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서 전투통제실 내부 구조와 기밀 송수신 절차를 상세하게 언급하다가 제지받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벙커 현황과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실명 등 여러 건의 기밀 사항이 공개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나라에 어떤 우방이 핵심 정보를 주겠는가.

책임은 정치권에도 있다. 청문회는 출석 증인들에게 면박을 주고 호통을 쳐서 굴복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말하기보다는 말을 잘 들어주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잘잘못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판단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제복 입은 증인을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경우 그 특수성과 보안 문제 등을 고려해 공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적법하게 처벌하고 잘못된 것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군인의 명예와 군사기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제복의 위상이 바로 나라의 품격이다. 군은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안보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사례가 있었다. 그렇지만 안보가 확고해야 민주주의도 지켜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장

<원문출처>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101508491?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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