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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주 서경대학교 명예교수/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


이희주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민족혼’을 일깨운 명성황후의 죽음.jpg

이희주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10월 8일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다. 129년 전, 1895년 10월 8일 일제는 천황 직속의 대본영 주도 아래 조직적으로 조선의 국모를 살해했다. 고종의 근대화와 외교정책에 큰 힘이 됐던 명성황후의 내조는 일제의 조선 강탈에 위협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명성황후는 고종의 대리 표적이 돼 일제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고종은 권력과 근대화 의지가 강한 군주였다. 1873년 친정체제를 선포하면서 대원군을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고 직접 국정 운영을 주도했다. 조선의 정책도 쇄국에서 개방체제로 전환됐고, 고종은 부국강병과 주권 확립을 목표로 근대화에 주력했다. 젊은 엘리트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 보내 서구 문물을 직접 견문하도록 한 것도 고종의 근대화 의지를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의 중요성에 착안해 근대식 학교 설립에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초 사학기관인 배재학당의 학명은 고종이, 이화학당의 학명은 명성황후가 내린 것이다.


또한 청일세력이 조선 내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 속에서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먼 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청일세력을 견제하는 수원정책을 제안했다. 수원정책은 당시 외국에서도 감복할 만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고종은 회고했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들의 저서도 공통적으로 근대화 의지가 강한 개혁적이며 외교력이 뛰어난 인물로 명성황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비참한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당시 명성황후 장례식 상황을 기록한 외국인의 저서나 독립신문을 보면 명성황후의 죽음에 온 민족이 분노했다. 민족의 단결된 에너지는 ‘대한제국’ 성립과 ‘항일정신’의 초석이 됐다. 명성황후의 죽음이 한국 근대사에서 최초 ‘죽음의 정치’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 ‘항일정신’은 일제에 빼앗긴 ‘대한’을 되찾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연결되고 있다.

명성황후의 삶과 죽음은 이처럼 우리 역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인식에 여전히 부정적으로 자리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 평판은 식민사관과 맞닿아 있다. 나라를 빼앗긴 책임을 일제는 조선 내부에 전가하기 위해 ‘조선 지배층의 분열과 고종의 무능함’이라는 상징 조작을 했다. 그 계락의 하나로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심화시켰다. 그리고 끊임없이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폄하시키고 왜곡했다.

다음으로는 사료 문제다.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를 기록한 사료에 대한 비판 없이 이를 인용한 학자나 지식인들의 무책임함이다. 기쿠치 겐조나 다보하시 기요시 등 일본인이 저술한 자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순국지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현의 저서 「매천야록」은 그동안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판의 근거자료로 인용됐다. ‘순국지사’라는 권위가 발생해 황현의 「매천야록」에 대한 자료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인용한 것이 오히려 사료로서 한계와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에 직접 가담한 기쿠치 겐조가 이토 히로부미의 명으로 저술한 「조선최근외교사-대원군전」 부록인 「왕비의 일생」에 근거한 정비석의 소설 「민비」는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결론적으로 식민사관과 무책임한 사료 인용으로 그동안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가는 확대 재생산돼 왔다. 한 인물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맥락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

명성황후는 제도적 직위가 없었기 때문에 정사기록이 극히 제한적이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들의 저서, 일본 군대의 공개된 비밀문서, 명성황후의 편지글 등 다양한 자료들의 분석과 당시 정세 상황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명성황후의 삶과 죽음이 올바로 평가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판의 기저였던 식민사관 극복은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는 중요한 기틀이다.

<원문출처>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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