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수 교수의 디지털금융 이야기’
서기수 서경대학교 금융정보공학과 교수.
2016년 4월 7일 자본시장 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참석자의 면면을 보면 이 회의가 얼마나 비중 있고 의미 있는 회의인지 알 수 있다.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실장이 참석했고, 업계 대표로 디셈버&컴퍼니, 쿼터백, 위즈도메인 대표가 참석했다. 또 금융기관 실무자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하나은행, 신한은행이, 연구원·컨설팅사 관계자로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연구원, 엑센츄어 담당자가 함께했다.
이 회의는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모델 및 금융기관의 융합사업모델, 테스트베드 운영방안 등 자산관리서비스 활성화 관련 업계·학계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당시 이 회의에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비대면 계좌개설, 인터넷 은행 등에서 시작된 핀테크 논의가 자산관리 분야에 접목돼 로보어드바이저까지 진화하고 있으며, 로보어드바이저가 (1)저렴한 비용으로 (2)언제, 어디서나 (3)개인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문서비스의 혁신과 대중화를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관리서비스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의 발전 속도가 탄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실천방안으로 핀테크를 기반으로 자문서비스의 품질과 활용도를 제고하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특히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와 연금 등 장기·복합 투자 상품이 활성화돼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자문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자문서비스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참석자 모두가 공감했다.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규제체계 혁신을 위한 선도적인 시도로서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Regulatory Sandbox)'를 실시하게 됐고, 객관적이고 믿을만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의 검증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약 7년이 흐른 현재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했고 투자자들의 또 하나의 투자 채널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에 로보어드바이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스템펀드'나 'AUTO 펀드'라고 해서 투자자가 일정한 목표 수익률을 지정해놓으면 펀드매니저의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자동으로 환매나 재투자를 진행하며 '리밸런싱'이 이뤄지는 상품이 로보어드바이저 금융상품의 시초가 아닐까 싶다.
이후 TDF(Targer Date Fund) 등 투자자들의 은퇴시점에 맞춰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안정형으로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펀드상품이 많은 관심을 받았고, 최근에는 TRF(Targer Risk Fund) 등 투자자들이 자신의 성향을 고려해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따로 나눠서 투자할 필요없이 한번의 투자로 비중을 조절하는 상품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의 열풍으로 인공지능(AI)이 아예 고객의 자산을 맡아서 관리해주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후에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앞질렀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자산관리시장의 '게임 체인저'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단기 주식이나 ETF(상장지수펀드)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되는 투자에서 퇴직연금 등 장기상품에도 적용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2022년 가을에 출시한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출시한지 3개월만에 가입자 2200명, 1400억원의 가입금액을 달성했고 현재에도 순항중이다.
이제는 우리가 대놓고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가입하지 않아도 서서히 다양한 상품에 로보어드바이저 기능이나 방법이 스며들어 자동으로 자산배분이 일어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손쉽게 모바일로 앱(App)을 다운로드 받고 로보어드바이저라는 이름으로 투자를 하다보니 부작용이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놓치기 쉽다. 이에 정부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신뢰성·안정성 제고를 위해 어느 정도 검증을 통해서 포트폴리오 추천이나 운용, 알고리즘 합리성, 해킹 방지체계 등의 작동을 테스트하고 발표하는 테스트 베드를 운영하고 있다.
테스트베드를 거친 서비스에 좀더 검증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유의할 점도 있다.
테스트베드는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의 유효성, 시스템의 안정성, 보안성 등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며, 일반 투자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도록 로보어드바이저의 일정기간 운용 수익률과 변동성(위험지표) 등을 비교 공개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자문, 일임을 직접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확인하는 절차이며, 운용에 참가한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의 자문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과 관점에서 검증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또 테스트베드를 거치지 않은 상품이나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테스트베드의 검증 항목을 숙지해서 개인적으로 따져보고 투자를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테스트 베드 검증 항목 및 내용
이처럼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에 있어서 투자자 본인이 챙겨야 하는 유의사항도 있다. 우선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는 평균적인 가정을 기반으로 제시되는 투자 조언이며, 금융시장의 모든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한 변수가 하루에도 여러번 발생하는 현재의 투자시장의 이슈와 위험을 시스템적으로 실시간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로보어드바이저의 투자조언은 투자자의 반응(질문에 대한 답변)에 기반하여 생성되기 때문에, 투자자의 정확한 성향에 관한 데이터 입력과 답변이 필요하다.
만약 그때그때 기분이나 다른 사람 조언 등에 솔깃해서 조금이라도 본인의 의사와 다른 내용을 정해놓으면 자칫 큰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유의사항 세 번째는 투자자의 금융상황을 모두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조언이 당초 목표로 하는 투자수익률과 제대로 된 자산배분이나 조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정확한 자산현황의 입력이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산배분 알고리즘의 구조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투자에 임해야 한다.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열심히 세금 공부를 하는걸 보고 거래하는 세무사가 있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자산가의 대답은 '내가 그래도 알고 있어야 사람을 부리던가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필자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처럼 아무리 발전하고 성장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도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늘 공부하고 같이 학습하는 독자들의 습관과 자세를 기대한다.
<원문 출처>
아시아투데이 as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