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석 서경대 인문사회대 학장·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
대법원이 지난 3일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압수영장 발부 전 심문 절차’와 ‘디지털 증거 압수 시 집행계획 제출’ 등이 포함됐다. 학계와 별다른 논의도 없던사항을 전격적으로 입법예고해 당혹감이 든다. 개정 방식과 내용이 적절한 것인지 우려스럽다.
개정안에 따르면 법원은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불러 심문하는 것이 가능하고, 대상자가 출석하지 않는 경우 강제 구인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을 법률이 아닌 대법원 규칙에 두는 것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2조에 명백히 반한다.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범죄 증거 인멸할 가능성 커져
디지털 증거 압수 제한도 문제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심문 절차를 열 필요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검사는 영장 청구 시 혐의 소명을 위한 수사기록을 제출하므로 법원은 이를 검토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청구를 기각하면 족하다. 대법원은 미국 법원의 경우 심문을 거쳐 압수영장을 발부한다고 설명하지만, 미국은 수정헌법 4조에 따라 압수수색 필요성을 선서로 소명해야 한다. 선서 진술만 있으면 서면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도 영장 발부가 가능한 구조여서 한국의 형사사법체계와 전혀 궤를 달리한다. 독일·프랑스·일본 등도 기록 심리를 토대로 영장을 발부할 뿐 심문 제도는 전혀 두고 있지 않다.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이 도입되지 않아 진술증거 확보가 여의치 않은 한국 현실에서 압수수색을 통한 객관적 증거 확보는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라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도 급증하는 추세다. 그런데 대법원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향후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 수집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결과적으로 실체 진실 규명에 중대한 장애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심문 대상은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수사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제보자 등 참고인이나 피의자·피압수자에 대한 심문까지도 가능하다. 그런데 법원에서 피의자에게 소환 통지를 하는 순간 압수수색 예정 사실은 공표되는 셈이라 중요 증거는 즉시 인멸될 것이다.
피해자나 내부고발자의 경우 심문 과정에서 신원이 드러나 위해를 당할 수 있고, 이를 우려해 신고 자체를 주저할 가능성도 크다. 심문으로 인해 영장 발부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증거 멸실의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신속성·밀행성이 생명인 압수수색의 특성을 도외시한 법원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개정안은 컴퓨터·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디지털 증거를 압수하는 경우 집행계획에 따라 사전에 법원이 허가한 검색어(키워드)만 사용해 전자정보(파일)를 추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수사기관도 압수수색 전까지는 전자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보관돼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사전에 검색어까지 특정하라는 것은 예지력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범죄와 무관한 단어로 위장하거나 공범들만 아는 은어를 사용해 파일을 저장한 경우 법원이 허가한 한정된 검색어를 통한 압수수색 시도는 수포가 될 것이다. 검색어를 추가해 다시 영장을 받아올 때쯤이면 그 파일은 이미 깨끗이 삭제돼 있을 것이다.
개정안 찬성론자는 압수수색의 필요성 및 당해 범죄사실과의 관련성 등을 사전에 심사함으로써 무분별한 전자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은 압수수색시 피의자에게 영장 사본을 교부하고 압수 과정에 참여를 보장하고 있어서 혐의와 무관한 정보의 압수를 방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압수물의 증거능력 부여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어 재판을 통한 사후 통제도 충분히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형사사법 체계에서 필요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있고, 특히 범죄 대응 역량을 약화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방안을 충분한 공론화 없이 대법원 규칙 개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법제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수사 실무에 큰 영향을 주는 사항인 만큼 학계와 법조 실무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도입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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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석 서경대 인문사회대 학장·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
<원문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