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학교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아우슈비츠에는 방직물이 전시돼 있다. 가스실에서 학살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물건이다. 그 앞에 선 방문객은 예외 없이 얼어붙는다. 정작 충격받을 일은 따로 있다. 간수, 관리자의 수기와 일기다.
고문과 살해 현장을 기록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죄책감이 별로 없다”는 그들 대다수의 진술 때문이다. 참혹한 일을 저지르고도 말년까지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는 게 가능할까?
가능했다. 타자에 대한 ‘비인간화 혹은 악마화’의 힘이다. 나치는 유대인, ‘빨갱이’ 등은 인간이 아니라는 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했다. 유대인들을 종교적 광신도, 혹은 공산주의 열혈 추종자로 규정했다. ‘광신도 무리인 유대인들’이 유럽의 생존과 문명을 파괴시키고 있다고 독일인을 세뇌시켰다. 유대인 멸종이 ‘인간의 모습을 지닌 해충’을 박멸하는 ‘청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누구도 악마화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유대인을 보자. 참혹한 피해자였던 이들은 이제 가해자가 됐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포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떳떳하다.
포격의 주역은 중동 지역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중·상류층인 동유럽 출신 유대인들(아슈케나지)과 구분해 ‘세파르디’로 불린다.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한다.
세파르디는 자신들을 아랍계 주민들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유대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극우 리쿠드당을 결성했고, 마침내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당을 밀어내고 집권했다. 현재 이스라엘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이 극우 리쿠드당이다. 이들은 DNA 분석을 통해 자신들이 과거 유대 주민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증명하겠다며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과의 슐로모 산드 교수는 『유대인의 발명』이라는 저서에서 “현재 유대인들은 유대교 포교로 인한 개종자들의 후손이며, 과거 유대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부분 남아 무슬림으로 개종했다”고 주장했다. 산드 교수의 학설대로라면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오히려 유대인의 본류이며, 지금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방인들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된다<『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셈이다.
교훈의 부재는 가해자에도 나타났다. 독도는 경술국치 전에 빼앗긴, ‘아픈 막내’다. 광복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되찾은 땅이다. 그럼에도 후안무치의 섬나라는 올림픽 지도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버젓이 그려 넣었다. ‘조선인은 열등하니 내지인의 피를 섞어 내지인 같은 1등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을 맹렬하게 유린했던 그들이 아니었나. ‘인간 악마화’의 폐해로부터 교훈 얻기를, 섬나라에 기대한 게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정부에 제안한다. 올림픽에 당당하게 참가하자. 그들의 부당함을 이유로 평화제전을 보이콧 한다면 그 역시 부당할 테니까. 대신 한반도기(旗)에 독도를 명료하게 표기해서 입장하자. 저들의 무도함을 징치하는 데, 이보다 더 품격 있는 방법은 없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한 팻말에 쓰인, 조지 산타야나의 명언이다. 패역한 섬나라에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주고 싶다.
“타자(他者)를 낮추라. 너희만 추해지리라!”
<원문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7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