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욱(서경대 특임교수)
대개 모든 인연은 우연이거나 의지에서 시작된다. 원하던 것은 아니나 뜻하지 않은 순간 찾아든 인연이 있는가 하면, 원하는 것을 위해 피와 땀으로 만든 인연이 있다. 인연은 아름다운 과정이거나 의미 있는 결실이다. 그것은 선한 사람일 수도 있고 귀한 기회일 수도 있으며 부귀와 권세 같은 세속적 위치일 수도 있다. 우연히 찾아든 길손 같은 만남을 정성으로 맞아들이고 사랑으로 갈무리하면 인연이 된다. 애써 궁리하거나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가 드디어 쟁취하는 인연도 있다. 전자 쪽에 가까우면 소극적인 사람이라 하고 후자 쪽 취향이면 적극적인 사람이라 편하게 부른다.
뜻밖의 조우(遭遇)이든 의도된 길에서든 작은 아름다움도 의미도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기껍지 않은 인연, 피하고 싶은 인연, 곧 악연이다. 하지만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그것도 인연이라 부른다. 사람은 생존에 유리한 본능적 기제(機制)로 인해 지나간 일에는 어진 누님처럼 너그러워지기 때문이다. 인연인가 아닌가는 그리움에 달려 있다. 세월이 흐른 뒤 뒤돌아 보았을 때 그리움으로 남아 있으면 그것은 인연이다. 기억의 창고, 저 어두침침한 구석에 넣어 두고 다시는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사연이면 그건 악연이다. 그저 잊어버리고 싶은 흉물 같은 것이다.
모임 중에 가장 허물 없고 언제나 흔쾌한 자리는 초등학교 동창회다. 우등생이던 철이도 꼴찌를 헤매던 석이도, 지주 딸 순이도, 도시락도 못 싸오던 혁이도, 모두 모두 달려 나와 그 시절의 건강한 유치함 속에 풍덩 뛰어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유독 한 친구가 나오기를 꺼려 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꼭 나오라고 해도 애매한 답변으로 피하기 일쑤였다. 알고보니 어린 시절, 동네 제일 부자에 유지(有志)이던 아버지 위세를 등에 엎고, 아이들에게 휘두른 횡포 때문에, 그 죄책감 때문에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까지도 특별한 추억거리로 이미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여태껏 그 계면쩍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살아보면 알게 된다. 남는 것은 그리움뿐이라는 것을. 참으로 나약하고 대책없는 단어, 그리움은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고 어울리며 울고 웃다가, 못내 떠나 보낸 다음 찾아오는, 여름날 저녁의 으스름 같은, 강물에 비친 달빛 같은 것이다.
행복이나 사랑, 희생이나 정의 같은 인상 좋은 단어들, 그 의미 심장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으니, 쉽게 떠나 가나니, 떠나 온 뒤엔 에우리디케를 애타하는 오르페우스처럼 결국은 돌아보고야 마는 애틋한 마음, 그곳이 그리움의 어깨이다. 그리움의 어깨는 인상 나쁜 말(言語)들에게도 빌려 준다. 빈곤, 아픔, 번민, 갈증, 외로움 등 두 번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경험조차도 영원하지 않음은 마찬가지이니, 지나고 나면, 지나고 새로운 계곡에 접어들면, 그때 보이기 시작한다. 아련한 재회의 설렘으로. 그러나 안다. 다시는 같은 감정에 물들 수 없음을. 그래서 그리운 거다. 그러니 모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
지나고서 그립지 않은 것이 있기는 하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업보(業報)가 그렇다. 타인을 모함하거나 괴롭히거나 고통을 준 경우이다. 사람이 존엄한 것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만큼 씻을 수 없는 죄는 없다. 스스로 아파하고 홀로 외로워하며 더불어 곤궁한 것은 지나가면 그리워지지만, 누구를 아프게 하고 너를 왕따시키며 나의 탐욕을 주체하지 못해 그를 모욕하였다면, 아무리 뻔뻔한 인간이라도 그런 일은 다시 생각해 내고 싶을 리가 없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교묘한 언사와 화려한 수사로 치장하여도 부끄러움으로 남을 뿐, 때로는 죽음으로도 다 갚을 수가 없다.
그리움은 그런 것이다. 사람의 선한 삶은 모두 그리움으로 각색된다. 우정도 미움도 배려도 질투도 모두 그리움으로 승화된다. 그대가 부딪치는 높은 파고도 내가 감내하는 숱한 정서도 그러하니,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움을 쌓아가는 일이다. 우연에서 시작된 만남이든, 착한 의지와 나비의 날개짓 같은 행운으로 입은 인연이든, 삶의 곳간을 그리움으로 아름답게 채워가는 일이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소향이 부르는 ‘바람의 노래’가 빗물에 젖어 애잔하다. 그래 나의 한 마디 말과 한 걸음의 발자국에 그리움이 고이게 하자.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문 출처>
건설경제신문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200810180712439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