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욱 특임교수
거친 봄바람에 풀이 눕는다. 바람의 세기가 여린 풀잎이 버티는 힘보다 세기 때문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다시 일어선다. 바람은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풀잎은 계속 생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에는 의지가 있다. 살려는 의지가 있고 더 발전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완전해지려는 의지가 있다. 모든 생물에 해당하는 진화의 논리다. 생명이 있는 것이 위대한 이유이다.
바람에겐 생명이 없다. 의지도 없고 목적도 없다. 제목 없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우연히 힘이 뭉쳐 내달리다 무구한 생명에 상처를 입히고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간혹 먼지를 털어내고 신선한 공기로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며 착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믿을 구석은 못 된다. 그런 선행은 바람의 공(功)이 아니며 오히려 풀잎의 삶에의 의지가 갑자기 닥쳐 온 어쩔 수 없는 난관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덕이라 할 것이다.
의지가 없는 것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꿈틀거린다고, 움직인다고, 나름 괴상한 힘으로 타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생물이라 분류될 수 있을지언정 그에게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한 진정한 생명체라 할 수 없다. 무엇이 되고자 할 때 그것은 더 나은 것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고자 할 때 그것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그런 것에 도달하는 것을 내포한다. 모든 생물은 그 속에 발전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발전이란 해악을 끼치거나 퇴보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고, 그것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의지이다.
억새풀 한 포기도, 음흉해 보이는 거미와 박쥐 한 마리도 아름답고 힘 있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의지로 가득하다. 옛 시절 밭농사를 망치는 주범이었던 억새가 나풀대는 하얀 꽃대로 가을의 귀빈 대접을 받고 있으며, 거미도 나쁜 곤충과 벌레를 옭아매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박쥐는 작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의심받고 있어 입장이 아주 곤란한 처지에 몰려 있지만, 그 역시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를 비롯해 많은 해충들을 열심히 처치하면서 씨앗을 먼 곳까지 퍼뜨려 자연을 풍요롭게 하는 착한 의지의 소유자다. 또한 생김새가 보는 이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하여 스스로 동굴 속에 지내면서 밤에만 활동하는, 영원한 자가 격리에 들어가 있는, 희생과 겸손의 미덕까지 보여 주고 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둘 다 재빠르게 옮겨 다니며 질병을 일으키므로 생물처럼 보이나 둘은 전혀 다른 종자다. 박테리아는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어 내며 혼자서도 발육 성장할 수 있으나, 바이러스는 홀로 살아 갈 수 없어 다른 살아있는 숙주, 인간이나 동식물의 몸이 필요하다. 박테리아는 분명 생명체이나 바이러스는 온전한 생명체라고 할 수 없다. 박테리아 한테는 의지가 있으나 바이러스에게는 의지가 없다는 말이다.
박테리아는 본래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들을 부패시켜 치워 주는 착한 일을 한다. 몇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사람이 잘못 다루었거나 변종이 나타난 것으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박테리아가 결코 원하지 않은 슬픈 일이다. 생명의 의지가 선한 것은 박테리아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착한 바이러스는 없다. 널리 퍼뜨리라고 ‘행복 바이러스’니 ‘기부 바이러스’니 좋게 불리기도 하나, 바이러스 자체는 모조리 훑어 쫓아내도 괜찮다. 우선 ‘코로나19 바이러스’부터 박멸시키는 것이 급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그것의 숙주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존엄한 타인의 인격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n번 방’의 족속들도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악성 바이러스의 길을 택한 자들이다. 정직한 삶의 의지를 발견하기 힘든 또 한 부류, 선거 때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변종 박테리아를 닮은 위선 정치 모리배들과 함께 몰아 낼 대상에 넣어야 하리라.
생명의 의지는 선(善)하다. 선하지 않은 것은 생명이 아니며 삶이 아니다. 생명 중 최고가 인간이니, 최선의 의지는 사람의 그것이다. ‘코로나19’ 확진 후 완치된 97세의 황영주 할머니는, “행복했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 의지가 나를 살렸다”는 소감을 밝혔다. 스산한 거리가 화창한 봄날의 들녘처럼 환호하는 그날까지 참 생명과 선한 의지를 믿어 보자. 생명의 의지는 선하고 강하다. 풀잎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다.
권재욱(서경대 특임교수)
<원문 출처>
건설 경제 http://m.cnews.co.kr/m_home/view.jsp?idxno=20200408170819937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