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제학술포럼 ‘아리타 도자기의 어머니 백파선’에 참가하면서 백파선(百婆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백파선은 임진왜란 때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여성 도공(陶工)이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에 660여 명의 조선 도공을 이끌고 아리타(有田)로 이주해 이삼평(李參平)과 함께 초기 도자기 생산에 공헌했다.
그녀가 도자기 집단을 이끌었던 아리타는 내 어머니 고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주 오갔기에 ‘아리타 도자기의 어머니’라 불리는 백파선이 가깝게 느껴졌다. 1998년에 출판되자마자 읽었던 일본 작가 무라타 기요코의 소설 ‘용비어천가(龍秘御天歌)’의 주인공도,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의 주인공도 백파선이 모델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백파’도 있다. 백파선은 17세기의 여성 리더로서 매력 있는 콘텐츠다.
나는 7월 초,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백파선과 관련된 곳을 다녀보는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내 고향 다케오(武雄)에서 그가 처음 머무르며 도자기를 굽고 지냈다는 사찰 고후쿠지(廣福寺)로 갔다.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 관광안내소에서 다케오야키(武雄燒)연구회장 미야시타 마사히로 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가마터를 안내해 주었고, 여러 자료를 소개해줬다. 놀랍게도 백파선의 남편이 그녀 못지않은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들이 진행했던 작업과 혼은 지금도 이곳에 이어지고 있었다.
사료에 의하면, 백파선의 남편은 1594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부인 백파선과 함께 고후쿠지의 스님을 따라 다케오에 정착했다. 이름은 한국의 심해(深海)에서 왔다고 해서 후카우미 소덴(深海宗傳)이라 했다. 그는 다케오 영주로에게 우치다무라(內田村) 땅을 하사받아 무리들과 함께 가마를 열어 도자기를 굽다 1618년 61세로 타계했다. 그는 다케오의 도공 지도자로 이 지역 도자기 사업의 기반을 만든 중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백파선의 남편은 각색이 지나치거나 허구의 인물처럼 그려졌다.
미야시타 씨는 다케오 도자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와 홍보 활동을 하면서 유물을 전시해 왔다. 지난해에는 소덴의 타계 400년을 기려 히류요(飛龍窯) 옆에 현창비(顯彰碑)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여 개의 가마 도예작가들이 협력해 도예 잔을 팔고 기부금을 모았다. 올해도 기일인 10월 29일에 앞서 10월 20일에 비석 앞에서 소덴을 기리는 행사(시ぶ會)를 열었다.
규슈도자문화관 스즈타 유키오 관장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다케오는 1590년대부터 400년의 도자기 역사가 이어졌고 90개의 가마터가 남아 있다. 가마터의 수는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에 못지않다. 지금도 가마 80여 곳이 남아 있고 도예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다케오 도자기의 명칭도 정리됐다. 이전에는 가라쓰야키(唐津燒), 고이마리(古伊万里), 히젠(肥前) 도자기 등으로 불렸는데 옛 작품은 고다케오(古武雄), 현대 작품은 다케오야키(武雄燒)로 정해 고유성을 강조했다.
고다케오 유물은 매력적이었다. 대범하고 자연스러운 물레 솜씨에 16, 17세기 한국의 분청사기에서 흔히 보이는 인화문이나 귀얄문, 그리고 갈색이나 녹색 유약을 힘 있게 구사한 접시나 하강리는 소박하고 모던하다. 고다케오는 일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에도시대의 모더니즘’으로 재평가받는다. 현대 작가들은 힘이 넘치고 자유로운 조선 도공들의 정신을 이어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조선 도공 선조들을 기리고 작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일본 문화는 어떤 면에서 또 하나의 한국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백파선이 아리타 도자기의 어머니라면 남편은 ‘다케오 도자기의 아버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한국에서 일본을 만나고, 일본에서 한국을 만난다.
12일 경남 김해에서 백파선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가마터 발굴 현장이 공개됐고, 학술 자문회의도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파선의 이야기가 한국 도자기 역사 연구에도 하나의 계기가 된 듯하다. 아직 밝혀지지 못한 것이 많고 여러 사료들이 서로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학술적으로도 서로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면 앞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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