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 철학과 교수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더니 이제 그 열기가 대학입시 문제로 옮겨졌다. 학종의 공정성이 논란거리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현행 대입제도에서 학종의 공정성이 문제되는 바탕은 그 제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 있지는 않다. 어느 제도를 시행하든 누구나 금수저 계층이 유리할 것이란 것쯤은 짐작할 수 있어 싫지만 대략은 이를 용인한다. 우리 사회 곳곳이 정의롭다고 볼만큼 우리가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학생종합부의 다양한 평가에 기득권이 담길 것이란 점도 우리는 인내한다.
따라서 학종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배경은 제도 자체의 결함보다는 학종의 입시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데 있다. 반면 그 이외의 입학 경로는 너무도 좁다. 심지어 '바늘구멍 정시 입시생'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리고 이 좁은 경로에 중산층 학생들이 몰리는 현실이 학종이라는 제도의 타당성을 좀 먹고, 나아가 입시 공정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적은 정시 비중은 수도권 주요 대학들에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대표적으로 서울대가 그렇다. 2020년 서울대 입시요강을 보면, 전체 입학정원 3,200명 가량에서 정시 비중은 21.4%로 684명이 이 경로로 입학한다. 나머지 78.6%인 2,500명 가량이 수시 전형으로 선발된다. 이 가운데 지역균형이 766명, 학종 일반전형이 1,739명 등이다.
서울대 입학의 주요 세 경로인 정시, 지역균형, 학종 각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2등 이내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균형 선발도 있다. 이는 물론 의미있는 제도이나 문제는 그 규모가 정시보다 많다는 데 있다. 이 나라의 대다수 가정이 입학을 원하는 그 대학에서는 지역균형 논리가 수능에 매진하는 다수 학생들을 압도한다. 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종의 '왝더독' 현상에 해당한다.
그리고 학종 출신의 입학생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다. 이는 정상이 아니다. 정시가 절반을 넘고 그 다음은 지역균형이 점하고 이어서는 학종 전형이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가 교육 및 입시에 기대하는 수준의 공정성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역전되어 있다. 대다수가 준비하는 정시보다는 지역균형이 앞서고, 그리고 이보다는 학종이 압도적으로 결정하는 이 나라의 대입 구조는 수능고사 현장을 더욱 엄숙하게 만든다. 지역도 아니고 학종도 아닌 대다수 수험생들은 갈 곳이 없다.
이렇게 이미 어긋난 대입 구조에서, 정부가 공정성 강화 방안을 사회적 약자를 위주로 준비한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교육 취약계층을 위한 전형 확대가 추진된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 몇몇도 지역균형과 기회균형 확대를 거론한다. 조국 논란으로 야기된 입시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약자 배려로 해석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댓글은 울분을 토로한다. 주인공은 중산층이다. "이 나라는 아예 저소득층이든가 금수저든가 그래야 살기 편할 듯."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중산층에서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라." '공허한 촛불'이란 아이디를 쓰는 이는 "여기도 저기도 못 끼는 중간지대 애들만 불쌍하다"고 한탄한다.
대입 공정성을 교육 취약계층의 눈으로 풀고자 하는 것은 어긋나도 한참은 어긋났다. 취약계층에 대한 도움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근원적으로 만들어가는 교육제도가 한편으로는 취약계층 지원과 다른 한편으로는 학종과 같이 모든 것을 동원하는 무한경쟁으로 구축되어서는 안 된다. 취약층 지원과 특권층 월권으로 각인된 대입제도는 중산층을 망각한다.
이는 어느 제도가 더 좋다는 판단에 기인하기 보다는 이 나라의 '지금'을 중산층이 만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한다. 누구나 중산층이라는 말을 거론하지만 이 말의 이해에는 보다 세심함이 필요하다. 지난 90년대말 외환위기 이래로 이 계층은 위기에 더욱 노출되어 왔다. 일자리는 계약직, 비정규직의 확산 앞에서 그 안정성이 위협받아 왔다. 그나마 일자리를 지탱해도 지난 20여년 아파트 값 급등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은 중산층 탈락의 위기에 직면하여 있다.
강남 아파트 하나가 정규직 일자리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이 상황에서 중산층의 남은 자존심은 더욱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자신들이 중산층이라고 여기게 만든 토대인 유력 대학 입학에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학종으로 막혀 있다. 이 중산층은 이제 댓글로 발언한다. 중산층을 순진한 바보로 만드는 입시제도는 안 된다.
<원문 출처>
디지털타임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9111502102269061001&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