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세상 3/30
착취는 짜내서 뭘 얻는 행위다. 기름이나 과일즙을 짜낸다는 말이다. 힘없는 자의 재화를 가혹하게 짜낸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탐관오리(貪官汚吏)의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수탈(收奪)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 밖에도 압착(壓搾), 박삭(剝削), 반박(盤剝), 수괄(搜括) 같은 단어가 두루 사용된다. 중국이 착취 분야에 관한 한 우리보다 앞선 모양이다.
착취가 권력관계, 혹은 갑을 관계를 의미하다 보니 향락과 자주 연계된다. 백성을 착취해 향락을 즐기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 말이다.
만당(晩唐) 시인 두목(杜牧)은 배를 타고 가다 가녀(歌女)가 부르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듣고 탄식을 금치 못한다.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망국을 재촉한 음탕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가녀는 망국의 한을 모르겠지. 강 건너에서 ‘후정화’ 소리 들려오네”라고 담담히 읊었다. 그러나 내면에는 국가 위기를 모른 체하고 향락에만 탐닉하는 고위층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이처럼 작가가 숨겨 놓은 뜻을 ‘현 밖의 소리(弦外之音)’라고 한다.
저명한 근대 시인 빙심(氷心)은 ‘다시 어린 독자에게 부침(再寄小讀者)’이라는 제목의 연작집 제8권에서 “지난 300년간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교묘하게 뜯어내고 화끈하게 수탈했으며, 이를 고스란히 가져다가 본국 치장에 썼다”고 중국 인민들에게 고발했다.
요즘 ‘버닝썬 사건’으로 소란스럽다. 연예인 한 명은 구속됐다. 관련자 모두 한류의 중심 인물들이다. 한류 콘텐트의 생산 시스템이 거대한 착취공정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노예 계약서’, 그리고 사생활 간섭까지 포함된 착취 구조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보조 출연자(엑스트라)와, 저임 스태프들에 대한 착취도 일상이 됐다.
착취 구조로 몸집을 불려온 제작사와, 그 울타리 안에서 부와 명성을 쌓아 올린 일부 스타들이 벌인 일탈 혹은 범죄 행위는 만당 시대 귀족들이 벌였던 망국 파티와 어쩐지 닮았다. 착취는 늘 향락과 동행한다.
진세근 서경대 겸임 교수·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
<원문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426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