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연대(連帶)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1980년대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온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연대)’ 덕분이다.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연대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단어가 됐다.
중국에서는 연대 대신 ‘연수(聯手)’라는 말을 쓴다. 손을 마주 잡는다는 뜻이다. 량치차오(梁啓超)는 저서 신중국미래기(新中國未來記) 제4장에서 단기필마(單騎匹馬)의 고적한 느낌을 이렇게 노래한다.
“강호를 내달리고 있건만, 국민 된 자의 책임을 다하려 몸을 쥐어짜고 있건만, 애석하도다, 함께 손잡고 나갈 동지가 없음이여! (如今正在奔走江湖,想盡盡自己一份國民責任,可惜没有聯手的同志)”
온건하지만 가장 강력한 연대는 동심동덕(同心同德)이다. 동심은 마음을 함께하는 것이고, 동덕은 올바름을 함께하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 뭉친다는 말이다.
동심 동덕은 『주서(周書) 태서(泰誓)』에 처음 보인다. 주 무왕(武王)은 상(商)나라 주(紂)왕을 치기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
“용사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주왕은 황음무도하다. 대신들을 도적으로 대하고 친구를 원수처럼 여겼다. 하늘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도 악행은 끝이 없도다. 하(夏)의 걸(桀)왕은 하늘의 이치를 거슬렀기에 하늘은 탕(湯)을 보내 그를 내쫓았노라. 주왕은 비록 천 명, 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으나 백성의 마음을 떠났고, 덕에서 떠났도다(離心離德). 우리는 십여 명에 불과하나 동심동덕하니, 하늘이 반드시 백성들의 염원을 이뤄 주실 것이다. 주왕을 치자! 탕왕의 대업을 이루자!”
주왕은 자살했고, 상국은 망했다.
‘미투(MeToo)’ 불길이 ‘위드유(With You)’로, 그리고 ‘타임스업(Time’sUp)’으로 옮겨붙었다. 고백에서 연대로, 그리고 사회운동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성폭력이 성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란 점을 직시한다면 이제 남자들도 마음으로, 몸으로 나서야 한다. 이게 동심동덕이다. 동심동덕이 이뤄져야 ‘동심동행(同心同行)’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사회가 바뀐다.
진세근 전 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