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본지 논설위원 / 서경대 철학과 교수)
2018.03.04 15:49:26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올림픽, 학문, 민주주의도 그들에게서 시작됐다. 험준한 지형의 그리스 반도는 그들을 분리시켜 협소한 지역에 모여 살게 했다. 100여 개의 도시국가로 분리된 그들은 신화를 공유하고 그리스어로 소통했다. 언어적 통일성은 분리ㆍ분단된 그들이 그리스어를 모르는 이방인들을 만날 때 실은 하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강렬한 매개였다.
그리스인들은 같은 민족임에도 갈등과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전이 그치지 않았다. 내전 가운데 그리스 운명을 결정한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다.
도시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격돌하고 스파르타가 승리한다. 스파르타는 자신의 귀족 체제를 아테네에 이식하려 하나, 아테네 민주파 시민들은 아테네 성곽에서 귀족파를 지원하고 있던 스파르타 왕 앞에서 데모를 벌여 왕이 며칠간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스파르타는 순순히 물러가지만 이러한 사태 전개는 그리스 역사 전체를 결정한다. 내전으로 그리스 역량이 약화된 시기에 마케도니아 왕국이 강성해진다. 앞선 시대에 페르시아를 물리칠 때 발휘되던 마라톤 아테네의 그 힘은 살아나지 못한다. 결국 고대 그리스 역사가 마침표를 찍는다.
갈등과 종말의 역사가 이어지던 그리스에서도 올림픽은 지속됐다. 그리고 적대 행위도 중단됐다. 이들은 축제를 즐겼다. 축제에서 겨뤄지던 종목은 오늘날의 세분화된 종목과는 매우 달랐다. 고대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를 끌던 경기는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투창, 레슬링으로 구성된 5종 경기였다. 한 종목에 특화된 역량이 아니라 총체적 역량이 구경거리였다. 전문성보다는 전인적 역량이 초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특화된 능력을 중시하고 이에 많은 보상을 주는 데 익숙하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나누고 나아가 단거리와 중장거리를 나누어 시청하고 승자에게 환호한다. 직업에서도 전문인은 보다 많은,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과도한 보상을 받는다. 이 시대는 전문성으로 질주하는 시대다. 이를 두고 역사가들은 귀족시대에 이어서 대중사회, 시민사회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 시대가 도래했다고 오늘날을 진단한다. 모두가 전문가이고자 하며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과 교육부도 대학들의 획일성을 오래전부터 문제로 인식해 특성화 방향으로 질주해왔다. 각종 대학평가에서 특성화는 핵심 화두다. 이러한 추이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한국 대학들의 역사가 거의 모두 20세기 중반 이후 함께 시작되고 또한 사립대학이 대다수인 풍토에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간 탓일 것이다. 국문과, 영문과 그리고 수학과를 세우는 기본 세팅을 한국 대학들은 평균적으로만 갖춘 것이다.
그리고는 질적인 발전을 못한다고 대학의 획일성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문제라고 보는 그 획일성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학의 대학다운 면모를 구비하는 발전 단계의 한 현상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한 구조를 기반으로 특성화가 나타나면 의미 있는 질적 발전일 것이다.
그런데 양적 팽창이 보인 그 획일성이 유구한 역사의 서양 대학 특성화 앞에서 너무도 초라하게 보이는지 특성화 구호가 난무한다. 몰아주기가 횡행한다. 외형적인 형태의 대학 모습마저 허물고 특성화 구호가 자리한다. 도달하는 지점은 특성화된 대학일까, 아니면 특성화된 전문인 양성소일까? 자신의 전문성에만 의지하는 전문인은 사회와 쉽게 유리되어 겉돈다.
올림픽 이외에 그리스인들이 시작한 민주주의와 학문도 이와 밀접히 연계된다. 민주주의도 전문적 관점, 직업적 이해관계로만 주장될 때 헛돈다. 민주적 가치는 전문성과 직업성을 포괄하는 보다 상위의 시각인 시민의식이 등장할 때 실현된다. 또한 학문 세계에서의 융합 구호도 전문성과 직업성들의 온갖 만남이 아니라 그 기반에 인간 존재와 역사가 있다는 포괄적인 시선이 구비될 때 실현될 수 있다.
<원본기사>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86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