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영국 옥스포드 대학 공채 정교수이자 한국인 최초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 동시 정교수 김종민 박사, 공동연구 협의 차 서경대 방문
조회 수 32231 추천 수 0 2016.09.22 17:26:15
처음엔 많이 생각났다. 버리고 온 게 너무 많았다. 수많은 ‘세계 최초’의 역사를 함께 쓴 연구원들, 매년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해 준 회사, 이곳에선 최고 대우지만 지금의 5배였던 연봉…. 17년간 일했던 회사를 떠나와 남들의 반이라도 따라갈까 하는 걱정이 컸다.
2012년 3월 삼성종합기술원 김종민 전무(60)의 직함은 ‘영국 옥스퍼드대 전기공학과장’으로 바뀌었다. 올해 초 케임브리지대로 옮기고, 지난달 23일 서경대를 찾은 김 교수를 불쑥 찾아가 만났다.
김 교수가 바랐던 대로 그의 이직을 아는 사람은 한국에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시 옥스퍼드대에선 “삼성의 나노 전문가가 한국인 최초의 공채 정교수로 온다”며 떠들썩했다. 김 교수는 삼성이 핵심 기술 인력에게 부여하는 최고 명예직인 ‘삼성 펠로’ 1기(2003년)다. 삼성 펠로 동기가 현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이다.
김 교수는 삼성이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기술을 다수 개발했다. 1999년 카본 나노튜브를 이용한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 2011년 컬러 퀀텀닷(양자점) 디스플레이가 그랬다. 그가 가진 특허만 250개 이상. 세계적 과학지 ‘네이처’ ‘사이언스’는 그를 나노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로 소개했다.
옥스퍼드대로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흔에 결혼해 늦게 얻은 아들, 아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을 유학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하던 김 교수는 영국의 친구에게서 “옥스퍼드대 교수 공채 공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2011년 8월 면접 후 2시간 만에 공대 학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인 교수를 처음 받는 옥스퍼드대는 김 교수에게 정년 보장과 교수 추천권은 물론이고 ‘스타트업 펀딩’으로 연구비를 10억 원 이상 지원했다. 김 교수가 따로 수주한 연구비만 수백억 원이다. 퀀텀닷 연구는 고효율 태양전지, 스마트 조명 등으로 발전시키는 중이다.
올해 1월 김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전기공학과 교수(1944)’로 자리를 옮겼다. 전기공학과에 정교수 자리가 만들어진 1944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 타이틀을 받은 건 김 교수가 네 번째. 케임브리지대 이공계 내 최초의 한국인 정교수다.
지난달 23일 김 교수가 서경대 나노융합공학과를 찾아왔다. 나노 구조물을 이용해 당뇨 환자의 혈당을 체크해 인슐린을 자동 투입하는 센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서다. 서경대 김종훈 교수가 관련 연구를 오래했다고 들은 김 교수가 선뜻 학교를 방문했다. 김종훈 교수는 “유명한 분이 작은 대학에 찾아와 줘 놀랐다”고 했다.
김 교수가 만든 ‘한영 프로그램’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매년 한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이 교류하며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김 교수는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통합한 옥스브리지 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의 젊은 과학자를 많이 데려오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가정형편 탓에 장학금을 준다는 곳만 찾아다녔다. 철도고(현재 폐교)와 홍익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던 이유다.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석사를 시작한 것도 학비가 저렴해서였다. 거기서 나노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윌리엄 카 교수를 만난 게 큰 전환점이 됐다.
김 교수는 옥스퍼드대에서 한국 유학생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고 했다. 한국에선 ‘시험 귀신’이던 유학생들이 4점 만점에 3.6점 이상인 학점 기준을 못 채워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발전하려면 창조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인문학을 죽일 게 아니라 이공계와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61005/806226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