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과 한미동맹.jpg [기고]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과 한미동맹.jpg](https://www.skuniv.ac.kr/files/attach/images/81/679/269/8f8695e5a16c3324a6e37bb9404ecae0.jpg)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
이른바 ‘광인 이론(madman theory)’, 즉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게 있다. 국제정치학 사전에도 나오는 이 전략은 사실 고도의 합리적 계산 아래 이뤄지는 이성적 협상 전략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36대 대통령이 베트남전 초기인 1960년대에 북베트남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소련을 상대로 이를 처음 구사해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이 전략의 실제 원전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라는 속설이 있다. 때는 1953년 11월로 당시에 부통령이던 닉슨이 그 한 달 전에 타결된 한미동맹을 기념하고자 서울을 찾았다. 그런데 바로 5개월 전인 6월 이 대통령이 세계를 경악시킨 일을 했다. 유엔(UN·국제연합)군에 통보도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이다. 이때 미국은 이 대통령을 미친놈이라고 분개하며 실제로 제거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런 강수를 둔 것은 ‘통일 없는 휴전’에 대한 반대 의사 표명과 동시에 이때 논의되던 한미동맹을 미국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국군만의 북진’ 같은 더 큰 일도 벌일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였는데 결국 이게 먹혀든 셈이다. 이 대통령은 닉슨 부통령을 만나 수개월 전 반공포로 석방과 그 이후 한미동맹 성사 배경을 설명하며 이를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센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맺은 상호방위조약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종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수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그때 이 대통령이 미친놈 소리까지 들으면서 한미동맹을 관철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이 과연 존재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미국이 안보를 보장했기에 경제개발에 매진하고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금 전 세계를 상대로 이 ‘미치광이 전략’을 펼치면서 나름대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를 겨냥한 것도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용으로 꺼낸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이다. 최근 J.D. 밴스 부통령이 “미군을 아껴서 배치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다 이에 장단을 맞추는 행보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이 전략에 숨은 코드를 잘 알고 대처해야 하겠지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주한미군이 한국 방위가 핵심이지만 넓게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군사 전략은 기동성과 전 세계적인 배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말하자면 전략적 유연성이다.
다음으로 방위비, 즉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부담해야 한다.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국방비를 미국이 거의 부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만큼 지나치게 인색해선 안 된다.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으며 숫자보다는 존재 자체가 전쟁 억제력을 가진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러·우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났다. 취임하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을 주도하고 있지만 당사국 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복잡한 국제관계가 얽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6·25전쟁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 그것도 통일을 염원하던 한국은 빠진 채 유엔군과 중공군 및 북한군 간에 체결되었던 전례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 드문 사례에 속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우 전쟁은 북한군 참전 말고도 이래저래 우리에게 생각해야 할 많은 것을 던져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밖에도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게 있다. 러·우 전쟁 초반에는 대체로 러시아는 침략자, 우크라이나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략적 기조가 바뀌었고,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의 빌미를 주었다는 양비론적 시각이 슬금슬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침략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명확하다.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우리 군이 국제정치학계에서 사용하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란 용어 대신 6·25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전쟁을 지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든 우리든 이를 결코 망각해선 안 된다.
<원문출처>
스카이데일리 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69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