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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

서경대 명예교수

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1.jpg


역사적 평가를 양단(싓端)으로 받는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명성황후를 떠올릴 것이다.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 갈등을 일으킨 패륜의 여성이자 일제에 살해된 비운의 국모이다. 1866년 16세에 왕비로 간택돼 1895년 일제 전시 천황 직속 통수기관인 대본영 주도 아래 조직적인 범죄행위에 희생되기까지 명성황후 의 삶 속에는 격동기 조선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정보획득이 어려웠던 시기, 더구나 제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삶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하다. 그나마 관련된 자료도 풍문으로 기록됐거나 조작된 것이어서 그간 명성황후는 제대로 평가될 수 없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다


명성황후는 한미한 집안의 출생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명성황후는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중의 직계손으로 명문가 출생이다.실록에 의하면 고려조부터 학덕이 높은 집안으로 이색의 문집에도 언급돼 있다.


조선조에 와서도 명문가로서 명망을 유지하고 있었다.황후의 조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세종의 모후 원경왕후와 숙종비 인현왕후 두 왕후를 배출했고,나라에서 제사를 내려 영원히 지낼 수 있는 불천위에 해당하는 선조와 종묘배향공신도 배출된 집안이다. 명성황후의 조부 민기현은 대사간·이조 참의·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명성황후는 어릴 때부터 사대부가 여성으로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사대부가는 정치적 영역과 맞물려 있었기에 명성황후 장례식 상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외국인의 저서 그리고 독립신문 등을 보면 명성황후의 죽음에 온 민족이 분노했다.‘일제에 대한 복수론’에 기반한 민족의 단결된 에너지는 대한제국의 성립과 항일정신의 초석이 됐다.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된 시기는 신정왕후의 수렴청정기였다. 당시 조선은 순조 대 정순 왕후로부터 시작해 고종 대 신정왕후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기간에 14년 3개월의 수렴청정이 행해졌다. 수렴청정의 역할은 명성황후에게 중요한 정치적 유산이 됐다.


여성도 유교 경전이나 역사서 그리고 내훈이나 가훈서 등을 통해 정치적 학습을 했다.왕비로간택된 여성은 왕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명성황후의 지적능력과 지혜,그리고 정치적 학습은 이에 기반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된 시기는 신정왕후의 수렴청정기였다. 당시 조선은 순조대 정순왕후로부터 시작해 고종 대 신정왕후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기간에 14년 3개월의 수렴청정이 행해졌다. 수렴청정의 역할은 명성황후에게 중요한 정치적 유산이 됐다.


고종의 ‘대리표적’


당시 조선은 대내외적인 국가 위기가 최고조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종을 위한 적극적인 내조는 당연했다. 그러나 왕정체제에서 명성황후의 적극적인 내조는 고종의‘대리표적’으로 전화 됐다.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정체세력들은 고종을 공격과 비판 대상으로 삼았을 경우 초래될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종을 대신해 명성황후를 표적으로 삼았다.


일제는 고종을 무능한 군주로 만들기 위해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당시 정세 상황 분석과 두 사람간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대원군과의 권력갈등’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대원군은 자신의 가문을 왕위 계승 권역으로 창출한 사람이다. 고종·명성황후·대원군 모두 왕조의식이 투철했고, 격동기에서 조선의 생존만이 그들 모두의 최대 목표였다. 단지 생존전략이 달랐을 뿐이다.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2.jpg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유시민포럼에서 주제발표 하고 있는 필자(9.26)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는 정파간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일본은 다양한 국내세력과 정파 간 분열을 악용해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더욱 왜곡했다. 조선 점령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이들을 공작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계략의 하나가‘명성황후와 대원군의 갈등 구도’이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직 전의 경복궁 습격, 명성황후 암살 등 정치적 위기 상황마다 대원군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은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갈등 구도를 강화해, 정치세력의 분열을 조장하는 공작정치를 감행했다.『 갑신일록』도 그동안 알려진 바와 같이 김옥균의 단독 집필이 아니라, 일본인의 공조하에서 기록됐다는 김종학의 연구결과에 비춰보더라도 조선 점령을 위한 여론조작과 왜곡 등 일본의 공작이 끊임없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원군과의 갈등구도는 일제의 조작


‘명성황후가 민씨 세력을 동원해 대원군을 권력에서 몰아내고 국정농단을 했다’는 부분이다.명성황후와 민씨 세력 사이에서 그들의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간에 분리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왕실 여성의 정체성은 시가인 왕실과 사가,즉 공사 인식이 혼합돼 있다.왕실과 사가의 이해가 충돌했을 때,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경우에도 사가 이익보다 왕실 이해에 중점을 두었다. 수렴청정 이후에 사가 경주 김문이 정치적으로 몰락한 경우도 있다. 신정왕후의 경우에도 남편 효명세자의 개혁정책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것이 바로 고종 초기 개혁 정치였다.왕실 여성뿐만 아니라,평범한 어머니의 삶도 남편과 자식의 삶이 더 우선적인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명성황후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외세로부터 고종과 순종,조선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조선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세력이면 누구든지 인재풀을 활용하는 명성황후의 정치적 리얼리즘이 편지글에 드러나 있다.


결국 명성황후와 민씨세력 간 무차별적인 해석은 병리현상을 드러냈고,명성황후를 폄훼하려는 세력들은 이러한 자료를 악용해 부정적 평가를 확대 재생산시켰다. 


명성황후는 제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사의 기록이 극히 제한적이다.그런데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판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는 식민사관과 사료비판 없이 이를 인용한 학자나 지식인들의 무책임에 있다.특히 일본인 기쿠치 겐조가 이토 히로부미 명으로 저술한『조선 최근 외교사-대원군전』의 부록『왕비의 일생』에 근거한 정비석의 소설『민비』는 명성황후의 왜곡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식민사관 극복과 사료 비판


또한 황현의『매천야록』은 일본인의 저서와 함께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판의 근거자료로 이용됐다. 황현은 실체를 파악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보다는 풍문에 따라 기록했다. 더욱이황현은 국가 운영의 중심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기에 정치적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정보도 부족했다. 황현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명성황후나 민씨 세력과 대척점에 있을경우, 상황 맥락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을 내리기 어려울것이다.『 매천야록』에기록된명성황 후의 평가가 적대편향의 심각성을 지닌 것도이 때문이다. 그러나 황현이 역사적으로 우국지사로 평가받기 때문에 그가 남긴 사료에 대해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인용하는 경향이 심하다. 이것이 오히려 사료로서 한계와 위험성을 초래했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의 기록과 편지글은 명성황후의 삶을 추적하는데 유용한 자료들이다.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치밀함을 보인 일제의‘명성황후 흔적 지우기’획책과 자료 부족 상황에서, 명성황후를 만났던 외국인의 기록과 명성황후가 직접 쓴 편지글은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외국인의 기록은 명성황후와 기록자의 사적 관계 때문에 주관적 편향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제삼자적 위치에 있는 외국인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대 미 공사 부인 푸트 여사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앙을 지닌 푸트 여사가 귀국길에 일본 천황비로부터 초대받았다. 연회에서 명성황후를 혹평할 때, 푸트 여사는 이에 맞서 소신껏 명성황후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했다.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3.png

명성황후 친필 휘호(좌)와 편지(우)



이 외에도 외국인 저서에는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가 그동안 잘못된 정보라고 밝혔다. 오히려 명성황후를‘고아한 품격과 냉정한 지성을갖춘여성’이며,‘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인물’로 평가했다.


명성황후의 내조 형태는 편지글에 드러나 있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는 균형감과 솔직함 그리고 담대한 면을 지녔고, 고종의 보필자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종과 이견이 있을 때, 고종의 뜻을 받들거나 아니면 고종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는 조용한 내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명성황후의 죽음, ‘민족혼’을 되살리다


반면에 재정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당시 왕실 재정은 고종의 생신이나, 고종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충원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조선 여성의 삶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는 명성황후의 삶을 어머니의 관점에서 추적한 부분이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한국인의 사고인식은 명성황후의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편지글과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 근대사에서 최초 ‘죽음의 정치’로 전환된 ‘명성황후의 죽음’이 갖는 의미이다. 명성황후의 참담한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당시 명성황후 장례식 상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외국인의 저서 그리고 독립신문 등을 보면 명성황후의 죽음에 온 민족이 분노했다.‘일제에 대한 복수론’에 기반한 민족의 단결된 에너지는 대한제국의 성립과 항일정신의 초석이 됐다.명성황후의 죽음이 한국 근대사에서 최초‘죽음의 정치’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 항일정신은 일제에 빼앗긴‘대한’을 되찾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연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식민사관과 무책임한 사료 인용으로 그동안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가는 확대 재생산됐다. 한 인물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맥락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에 대한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


명성황후에 대한 정사 기록은 극히 제한적이다.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들의 저서·일본 군대의 공개된 비밀문서·명성황후의 편지글 등 다양한 자료들의 분석과 당시 정세 상황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명성황후의 삶과 죽음이 올바로 평가돼야 한다.동시에 명성황후의 부정적 평판의 기저였던 식민사관 극복은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는 중요한 기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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