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국가기밀 유출해도 간첩죄 기소 못해
中은 온갖 수법 동원 산업기술 탈취
강력한 처벌 가능토록 법규 강화를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의 해외 첩보망과 K2전차 주요 기술 유출 사건 등으로 국가 기밀 보호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국력의 척도가 첨단 기술력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 기밀 보호다. 우리는 K방산을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다. 현재 기술 반도체와 원전 등 12개 분야 73개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스파이는 정보기술(IT)·반도체 등 소위 첨단산업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며 근래 들어 주요 표적이 정밀기계·자동차·생명공학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총 106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례 가운데 3분의1인 35건이 국가핵심기술이다. 기술 유출이 확인된 50개 기업의 연구개발(R&D)비와 예상 매출액 등을 토대로 계산할 때 피해액이 대략 20조 2114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산업 선진국에서는 첨단산업 기밀 유출의 많은 부분이 산업화 후발 주자인 중국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이나 연구원으로 위장해 대학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거나 산업기술 보유자를 매수하고 해킹 조직을 활용하는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 도달하겠다는 목표 아래 2008년에 도입했던 ‘백인계획(청년 학술 리더 육성 계획)’을 발전시켜 ‘바다거북’이라고 부르는 해외 첨단기술 고급 두뇌 천인을 확보한다는 고등 인재 초청 정책을 수립했다.
중국의 정보 활동은 산업기술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화교나 재외국민들을 활용하는 핏줄 전략과 인해전술 방식으로 수집된 방대한 정보를 모자이크식 기법을 통해 분석한다고 한다. 실제로 2017년부터 시행된 ‘국가정보법’에는 모든 중국인이 국가 첩보 활동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중국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체류 외국인 250만여 명 중 중국이 37.6%를 차지한다. 지난해 적발된 첨단기술 해외 유출 사건 21건 중 14건이 중국이다.
문제는 현행 형법이나 군형법·국가보안법 등 방첩 관련 법이 냉전 시대에 만들어져 북한 및 북한과 연계된 반국가 단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군사기밀보호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방산기술보호법 등이 있지만 간첩죄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해외 입법 사례를 보면 간첩 행위를 ‘적국’과 ‘외국’으로 구분하지 않고 국가 기밀도 군사기밀이든 산업기술이든 강력히 처벌한다.
이번 정보사 사건을 간첩죄로 기소하지 못한 것은 이런 낡은 법 체계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국가 기밀을 외국에 유출할 경우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규 강화가 시급하다. 외국 해커들이 우리나라 전산망에 들어와 산업기술을 포함한 국가 기밀을 탈취해가는 현실에서 현행 정보통신망법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사이버안보법’ 제정도 시급하다. 또한 수미 테리 파문이 시사하듯이 ‘한국판 외국대리인 등록법’ 역시 고려해야 한다. 차제에 우리 군을 포함해 국가 방첩 활동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문출처>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DE83YRKP1/GG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