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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드라이 진과 맥주.jpg

윌리엄 호가스 작 "Gin Lane"


한 여성이 웃는지 우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제정신은 아닌 상태에서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나무 계단에 앉아 있다. 윗옷을 풀어 제쳤는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기보다는 손에 든 담배통에서 남은 것들이 있나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기는 거꾸로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머리부터 계단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데, 여자는 그 사실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릎 아래로 드러난 다리에는 매독 자국들이 얼룩처럼 선명하다. 계단 아래쪽에 시체 같은 몰골로 오른손에 술잔을, 왼손으로는 술병이 든 바구니를 쥐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개와 함께 멍한 상태로 있다. 그 남자의 바구니 속에 있는 종이에 ‘진(Gin) 부인의 몰락(The Fall of Mrs. Gin)’이라고 쓰여 있다.


글귀를 보니 여성은 독주인 진을 마시고 정신줄을 놓은 상태가 되었다는 걸 알겠다.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술잔을 손에서 놓고 있지 못하는 이의 바구니 속 술도 진이겠다. 계단 옆으로는 진을 쟁여둔 술 창고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음주 장려 광고 문구가 쓰여 있다.


Drunk for a penny

Dead drunk for two pence

Clean straw for nothing

(한 푼에 취하고

두 냥이면 고주망태,

짚더미는 공짜야)

값도 싸고, 취해서 쓰러지면 짚더미 위에서 그냥 쓰러져 자면 된다는 얘기다. 계단 위쪽 거리에서는 이 카피를 실천하는 양태가 펼쳐진다. 그림의 왼쪽부터 보면 술을 사기 위해서 전당포에 물품을 맡기는 부부, 관에 눕혀지는 여인의 시체와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기, 꼬챙이에 아기를 꽂은 채 춤을 추는 미치광이에 서로 진을 먹이고 싸움박질을 하는 사람들과 부서진 건물 꼭대기 층에 목매달아 죽은 이까지, 문자 그대로 복마전이다.

윌리엄 호가스(1697-1764)라는 영국의 화가가 1751년에 그린 ‘진 골목(Gin Lane)’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알려지기로 1700년대에 들어 영국에서 진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호가스가 그림을 그릴 때쯤에는 영국인 1명이 일주일에 진을 850cc 정도, 그러니까 300cc 병이라 치면 이틀에 한 병꼴로 마셨고, 런던 가구의 25%가 진의 제조와 판매에 종사했고, 진을 파는 술집이 7천 곳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니 저런 마치 1500년대의 유명한 화가 피터 브뤼겔의 <사육제와 사순절 사이 싸움>에서 고기와 음식들을 모조리 진으로 바꿔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진으로 인한 알코올중독 사회의 병폐를 경고하려고 호가스는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드라이 진과 맥주(2).jpg
윌리엄 호가스 작 "Beer Street"

술 소비를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호가스는 진과 비교되는 다른 술이 넘쳐나는 동네를 그린다. 이 그림에 나온 거리는 훨씬 깨끗하고, 전당포가 들어서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정비가 된 상태이다. 시체와 같은 몰골에 옷도 지저분하고, 그것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진 골목’ 사람들과 달리, 이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퉁퉁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당당한 자세로 큰 술잔을 비우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요즘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지만 1천cc 정도 크기의 맥주잔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맥주 거리(Beer Street)’이다. 아주 순수하게 독한 진 대신 도수 낮은 맥주를 마시라는 캠페인을 벌인 셈이다.

그림 속 인물 중 유일하게 낡아빠진 누더기를 걸친 인물이 있다. 왼쪽 위편에 보이는, 사다리 위에서 팔레트를 들고 술집 간판을 그리고 있는 인물이다. 자기 작품에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그의 옷차림과 얼이 빠진 채 자아도취 된 듯한 표정이 그가 ‘진 골목’에서 왔다는 걸 보인다고 한다. 화가인 윌리엄 호가스의 의도를 알 만하다.

‘진 골목’으로 피폐하고 섬뜩하기까지 한 잔의 폐해와 그 끔찍한 결과만을 보이자니, 너무나 공포와 혐오에만 치중한다고 느꼈나 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술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숨통도 트이게 하며 낮은 도수의 맥주로 소비를 유도하는 걸로 작전을 바꾸었다. 그래도 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장치는 필요하다고 봐서 누더기에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화가, 당시의 광고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을 집어넣었다.

술고래 광고주를 담당했던 한 친구가 양주 30병을 반주로 한 다음에, 드라이 진으로 마무리했던 악몽 같은 경험을 얘기했다. 드라이 진으로 인한 숙취가 내 음주 인생에서 고통스럽기로 상위 세 번째 안에 드는 숙취였다. 그 친구와의 저년 자리 후 집으로 돌아와 펼친 책에서 위에 얘기한 윌리엄 호가스의 진과 맥주를 그린 두 작품을 봤다. 두 작품 간의 관계에서도, 각각의 작품 속에서도 여러 반전이 숨어 있는 그림들이었다.

<원문출처>
매드타임스 https://www.mad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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