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채성준 교수 4일 기고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채성준 교수.
마약은 개인의 건강과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 공동체와 국가 건강성을 좀먹는 망국적 해악이다. 아편으로 망한 근대 중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인구 10만 명당 연간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이미 2016년부터 그 지위를 상실하였다. 마약 유통은 대표적인 국제범죄다. 마약의 생산과 이동, 밀매가 국제범죄조직에 의해 국경을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과 같은 국제범죄는 범죄양상이 출현했을 때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펜타닐에 대한 대응 시기를 놓쳐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는 ‘좀비 랜드’라 불리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가 늦게나마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으나 그 폐해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마약 이외에도 위조지폐, 밀입국, 인신매매 등의 국제범죄가 국가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더구나 급속하게 발전하는 AIㆍ딥페이크ㆍ딥보이스와 같은 첨단기술이 인터넷 도박으로 대표되는 사이버범죄나 보이스피싱, 연애빙자사기(로맨스스캠) 등의 국제금융 범죄에 악용되면서 서민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마약 또한 텔레그램과 같은 SNS와 다크웹을 이용한 밀거래가 보편화되고, 대금 결제에도 암호화폐와 핀테크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추적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4차 산업혁명에 따라 국제범죄는 더욱 하이테크화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는 ‘나이지리아 커넥션’과 같은 국제범죄조직에 의한 온라인 사기범죄 피해가 증가하여 국민 15명 중 1명이 피해를 입고 연간 약 70억 파운드(한화 약 12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에야 ‘국가사기 전담반’을 출범시키고 대응을 강화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쓰일 군사비를 충당하고자 IT 기반 사이버 범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암호화폐 탈취 등을 통한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정원은 2021년 북한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계된 정황을 포착하고 추적을 통해 군수공업부 산하 IT조직이 보이스피싱에 쓰이는 해킹앱을 중국 조직에 밀매한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2023년에는 사이버도박 조직에 도박사이트를 제작·판매한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 IT조직의 실체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국제범죄는 범죄의 결과 발생지, 범죄의 주체 및 객체의 국적 등이 여러 국가에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범죄 추적은 물론 범인 체포나 사법처리 과정이 일반 범죄와는 달리 어렵고 복잡하다. 국제사회는 국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UN 국제조직범죄 방지협약’을 체결하고 범죄정보 교환, 신원 확인, 수사 공조, 범죄인 인도 등과 관련해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인터폴(Interpol)’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국제범죄를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보고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 정보망을 지닌 국정원에 국제범죄정보센터(TCIC)가 설립된 지 올해로 30주년이 되었다. 지난 4월에는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의 필로폰 공급총책을 캄보디아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1년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학원을 오가는 청소년들에게 마약이 담긴 음료를 마시게 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의 주범이 검거된 것이다. 국정원이 결정적 단서를 포착하고, 검찰·경찰 등 국내 수사기관과 캄보디아 경찰청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만들어낸 성과였다. 2022년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수리남’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코카인을 전 세계에 공급하던 마약왕 조봉행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국정원이 갖춘 해외 정보망과 외국 정보·수사기관과의 긴밀한 공조체계가 바탕이 되었다. 앞으로도 국정원이 그동안 축적한 국내외 정보자산과 사이버 대응 등 첨단기술 역량을 총가동해 국제범죄 근절의 ‘워치타워’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원문출처>
데일리안 https://www.dailian.co.kr/news/view/1379964/?sc=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