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의 적막한 모습. 뉴시스
필수 진료과와 지방병원의 의사 구인난. 대한민국 의료의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의정 갈등의 배경이다. 이 갈등을 푸는 핵심 방안으로 실손보험의 조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비급여 중심으로 쏠리는 의료인력을 필수 진료과로 분산할 수 있고, 지방병원 인력난 해소는 물론 국민의 의료서비스 오남용까지 줄일 수 있다.
다른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의사도 '저위험 고수익'이 보장되는 진료과로 몰린다. 고수익의 대부분은 비급여 의료에서 발생하고 실비보험 확산과 비례해 왔다. 해당 과목 전문의는 물론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의사, 심지어 소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의사들까지 빨아들임으로써 필수 의료 기피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수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들조차 전문의를 포기할 수 있고, 전문의가 된 의사들도 지방에 내려가지 않고 수도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도 실손보험에 기반하고 있다. 꼭 하지 않아도 될 수술, 시술, 검사가 남발되면서 꼭 필요한 분야는 위축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모두 알고 있음에도 아무도 해법을 논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국민 개개인은 물론 의료시스템 전체의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실손보험이 보상하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 심사평가 제도를 제안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치료의 적정성과 수가를 정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고, 이미 시행 중인 비급여 의료비의 '진료비 확인 요청'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백내장 수술과 도수 치료에 우선 적용할 수 있다. 나아가 척추, 관절, 코막힘 등의 분야로도 순차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다음에 논할 문제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심평원이나 공공의료기관 등에 위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차적으로는 실손보험을 인정하는 적정한 기준부터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것이 어렵다면 100% 비급여인 진료에 대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본인 부담금을 건강보험 수준으로 인상함으로써 진료 남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손보험의 계약적 개선은 갱신형 주기에 맞춰 보험료 인상 폭과 연계하면 기술적으로 완화 가능하다.
가장 어려운 장벽은 개원의와 의사 협회의 반발로 예상된다. 의사들은 환자가 줄어들어 불이익을 당한다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의료계 내부에서 심도 있게 토론했으면 한다. 의료계의 논리는 '의사의 절대 수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의료 인력 배분이 문제이므로 의대 증원이 불필요하다'는 것으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개원의 등 내부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실손보험 비급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경우 논리적 설득력은 배가될 것이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원문출처>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208020002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