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대한민국 행정을 살리는 비법(秘法)
글‧임성은 서경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제기구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평가하면서 하나의 도식(圖式)이 생겼다. 바로 ‘경제규모 > 국가경쟁력 > 정부 효율성’이라는 서열이 그렇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IMD 2023년 평가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은 68개국 가운데 20위 권(28위)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 규모가 13위인 걸 고려하면 조금 뒤처진다고 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정부의 효율성’이다. 같은 평가에서 38위에 그쳤다. 그래서인지 ‘왜 다른 것은 수입하면서 행정은 그러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푸념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실로 행정 대(大)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관한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신청주의(申請主義)를 타파해야 한다. 신청주의란 당사자가 요청을 해야 행정이 반응하는 원칙이다. 국민이 신청하지 않으면 행정기관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국민이 가만히 있어도 행정이 알아서 움직이는 쪽으로 행정 체계를 바꿔야 한다. 이른바 ‘찾아가는 행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요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부가 먼저 반응할까? 가능하다. 데이터가 모든 걸 말해주는 시대에 와 있기 때문이다. 관료의 자의적 판단이나 감(感)에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면 된다. 이미 오랜 세월 행정 데이터가 축적돼 오고 있고, 빅데이터도 활용되는 시대 아닌가? 디지털플랫폼 사업이 현장까지 파급되도록, 기획 집행 환류 따로 현상을 해소해 나가면 된다. 최소한 신규사업부터라도.그러자면 데이터에 대한 관점을 재구성해야 한다. 데이터는 시점(時點)을 기준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축적된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 아주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대한민국의 행정은 통상 현재의 과제에 대응하는 데 급급한 편이다. 예컨대 사건ㆍ사고를 수습하거나 제기된 민원을, 주어진 과제를 해소하는 데 집중한다. 앞으로의 행정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하는 계획을 세우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 왜? 데이터가 이미 진행 방향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데이터에게 ‘홀로서기’만큼 낭비적인 것은 없다. 따로 있을 때 무심해 보이는 데이터라도 한 데 모으면 맥락과 내력이 발생한다. 대한민국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자면 개별 사업 시스템을 통합 사업 시스템으로 비꿔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정신건강 관리사업을 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 따로 논다. 청년, 장년, 노년 관리도 따로 운영된다. 한 사람의 일생에 관한 데이터를 한 줄에 꿰서 연계, 통합하는 행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고독사 위험군의 우선 순위를 재분류할 필요가 있고, 휴대폰 기지국을 통한 움직임 체크를 추가할 수도 있다.
행정 효율성과 관련한 또 한 가지의 아이러니가 있다. 그 많은 공무원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관련 예산과 사업도 증가하고 있으나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족도의 총량이 떨어지니 ‘정부가 무엇을 하느냐’는 추궁에 직면한다.정부의 사업 상당수가 시범 사업 수준에 그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뭐든 처음 시작할 때는 시험도 해보고 반응을 따보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제안하는 공무원, 계획하는 공무원, 집행하는 공무원이 따로 굴러간다. 입안 보고가 끝나면 고위직급은 손을 떼버리고, 후임 실무자 입장에서는 전임자가 이 사업을 왜 했는지, 효과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체크하기가 어려워지고, 애정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칸막이 행정에다 인수인계도 느슨하다보니 계획서 상의 사업 숫자는 늘어나는데, 사후관리가 흐지부지되다보니 혜택을 받는 주민은 늘지않는 비효율을 낳는다.
다 좋은데 그게 실행가능하냐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미 취학통보, 건강보험, 병무ㆍ예비군 행정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찾아가는 행정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출생 신고 또한 누락되는 신생아가 없도록 병원을 통하는 방법이 구체화하고 있다. 조각난 채 관리되는 행정 데이터를 연결하고 활용성을 높이기만 해도 찾아가는 행정의 범위를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민원서비스 전산화로 인해 무인발급기에서 주민등록 등ㆍ초본, 호적 등ㆍ초본은 물론 제적(除籍) 등본까지 뗄 수 있다. 그런데 호적 등본의 후신인 가족관계등록부는 무인발급기 이용이 불가능하다. 인감발급시 지문까지 확인하면서 운전면허증은 주민번호 뒷자리가 없어서 신원확인이 안된다고도 한다. 왜일까? 무인발급기 사업 당시 가족관계등록부는 없었고, 그 이후에는 담당 공무원이 이를 보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구멍을 메워 나간다면 행정 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원문출처>
쿠키뉴스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1013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