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아트스퀘어 초대전을 진행 중인 이승진 작가를 서울시 중구 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따뜻한 색채의 그림이 작업실 한쪽 벽면에 가득하다. 작가가 그려낸 동물의 얼굴을 한 인물, 동화풍의 캐릭터 묘사는 귀여운 상상을 일으키며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유년 시절부터 개와 고양이 등 동물과 함께 자랐다는 이승진 작가. 동물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과 상당히 닮아있음에 유대감을 느끼며, 그는 자연적 본성의 힘을 이해하고 탐구하기를 즐겼다.
동물과 교감하는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직시해서일까? 작가의 그림에는 세분화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하게 풀어져 있다. 꿈과 현실, 담장 안과 밖의 대상이 한 화면에 무질서하게 병치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쳐져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 선과 악 등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경계를 만들어 내지만, 동물의 시선으로 그는 ‘경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듯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살피고, 경계의 모호함을 마주할 때 우리는 굳건히 믿어온 고정관념과 편견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그리고 싶어요."
경계를 넘어 '공존’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이승진 작가. 우리 안의 경계와 분별을 인식하는 출발점에서, 공존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시는 30일까지다.
▲ 오늘 저녁, 90cm x 72cm (30호), 캔버스에 아크릴, 2021
작품 속 등장하는 동물들은 주변에 여러 종류의 개성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며, 동시에 상상으로 창조된 환상적인 주변 공간과 현실적인 모습이 결합된 풍경은 초현실적인 공간을 형성하며 사람들을 일상에서 초월하는 공간으로 인도한다. 공간과 동물 그리고 현실적인 사물들을 통해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 내면의 공간을 표현하려고 한다. - 작가노트 중
▲ 휴가, 116cm x 91cm, 판넬에 혼합, 2019
YTN 아트스퀘어 이승진 초대전 (4.1 ~ 4.30)
▲ YTN 뉴스퀘어1층 아트스퀘어(ARTSQUARE) 전시장
이승진 작가는 1985년생으로 서경대학교 비주얼콘텐츠디자인을 전공했다. 개인전, 단체전, 아트페어에 다수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코글 갤러리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이승진 작가와의 일문일답
YTN과 인터뷰하는 이승진 작가
Q. 전시 주제를 소개해 주세요. 동물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림에 여러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동물의 이미지로, 친숙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전달해 감상자들의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고, 일상을 초월하는 공간 속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개, 고양이, 앵무새 등 동물들과 함께 자랐다. 제게 동물은 순수하고 솔직한 친구처럼 느껴져 애정이 깊었고, 이들과 교감하며 동물의 세계를 자주 상상하곤 했다. 동물로 그려진 인물은 저 자신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제 얼굴이 악어와 닮았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악어의 얼굴을 한 인물은 주로 저 자신을 표현한다.
▲ 정글 크루즈, 130cm x 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Q. 꿈속, 동화 속 장면 같은 몽환적인 배경은 어떻게 떠올리나요.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가고 일어나는 일들을 포착해 특별한 영감을 얻거나, 평소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꿈'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특히 밤에 잠을 못 이룰 때 몽롱한 감정이 현실과 꿈 사이의 어떠한 경계처럼 느껴져, 알 수 없는 경계가 무엇인지 바라보고자 했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나의 욕망과 생각, 감정을 드러내기에 어떻게 보면 꿈도 내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꿈속에 있는 '나', 지금 여기 있는 '나'도 나인데 무엇이 진짜인지 '경계라는 게 있을까'를 생각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린다.
▲ 새벽 한시, 90cm x 72cm (30호), 캔버스에 아크릴, 2021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새벽 한시> 그림은 불면증이 심할 때 그린 그림이다. 잠이 들지 않는 새벽이면 어두운 방 안에서 TV를 틀어 놓곤 했다. 몽롱한 상태로 채널을 돌리다 보면 오래전 방영했던 옛날 프로그램에 시선이 가는데, 아주 예전에 알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한 중년 가수의 옛날 노래도 반갑다. 조용한 새벽,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을 친한 친구가 노래를 부르며 위로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빠져드는 기분, 몽환적인 감성이 배어 이 그림을 좋아한다.
▲ 모닝 트레인, 130cm x 162cm(100호), 캔버스에 아크릴, 2023
Q. 작품에 담긴 상상이나 스토리를 더 듣고 싶어요.
올해 그린 <정글 크루즈>와 <모닝 트레인> 작품은 놀이동산에서 영감을 얻었다. 최근, 정말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가봤는데 일상에서 떠나는 여행 같았다. 소풍 가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생각이 나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기분도 들더라. 놀이동산으로 가는 길마저 새롭게 보였다. 정신없는 출근길의 지하철 안도, 놀이공원으로 향하는 들뜬 마음으로 보니 이미 놀이동산의 퍼레이드 길처럼 느껴졌다.
사실 놀이 기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억지로 엄마 손에 이끌려 타거나, 안 무섭다더니 타고 나서 배신감을 느꼈던 기억도 있고. 근데 나이가 들어서 가보니 놀이공원이 새롭게 보이더라.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작은 불빛들이 반짝반짝하는 것들마저 소중해 보이는데, 보석 같은 일상을 마주한 듯했다. 곳곳에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워낙 많아, 캐릭터를 보면서 상상한 내용도 담았다.
▲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116cm x 91cm (50호), 캔버스에 아크릴, 2021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작품은 사랑의 양면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 이면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존재한다.
한편 사랑을 넘치게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 사랑의 감정에서 한 발 떨어져 그저 지켜보는 게 익숙한 사람도 있다. 그림의 오른 편에 앉아 있는 토끼에게 사랑을 주러 온 ‘토끼 가면’을 쓴 인물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닮고 싶은 마음으로 토끼 가면을 쓰고 ‘나도 너와 같아!’라고 관심을 끌고자 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불'은 관계에 관한 뜨거움을 얘기한다.
전반적으로 핑크나 밝은 노랑, 오렌지 계열을 사용한다. 퇴근할 무렵, 노을 지는 하늘이 참 아름답지 않나. 일상의 아름다움을 가미하고자 노을 색을 모티브로 배경색을 입혔다.
작품 제작하는 이승진 작가
Q. 작품을 관람하는 팁을 준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동물들과 많아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본성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공존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림에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함께 상상해 보거나, 색채의 조화를 느껴보시면 감상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출처>
YTN https://www.ytn.co.kr/_ln/0106_202304071740011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