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 시스루, 레이스, 핫팬츠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性)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른바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패션이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 국내외 봄·여름 시즌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핑크, 라임 등 화사한 컬러뿐 아니라 시스루, 망사, 레이스 등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소재들이 적극 적용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지면서 올해는 성별 구분 없이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마음껏 뽐내는 과감하고 화려한 젠더리스 패션이 본격적으로 대중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대학교 이지현 디자인학과 교수는 젠더리스 패션 대중화에 대해 “젠더 이슈 자체가 크게 거부감 없이 대중화되고 있다. 최근 개그맨 황제성의 샘 스미스 패션 패러디가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처럼 거부 반응보다는 즐기고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대중매체와 인터넷, SNS를 통해 다양성을 경험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화이트 셔츠와 망사, 핑크 재킷으로 완성한 아미의 젠더리스 룩.
더 과감해진 컬러와 소재
국내외 봄여름 컬렉션 무대에서는 핑크, 라임, 블루 등 화사한 컬러들이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복도 기존에는 착용하기 부담스러웠던 핑크부터 민트, 라임, 네온 컬러를 대담하게 사용, 채도 높은 컬러 등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른바 ‘도파민 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배우 이정재가 상·하의 모두 핑크로 맞춘 슈트에 진주 목걸이를 해 화제가 됐는데, 올해는 파스텔 핑크가 테일러드 슈트부터 캐주얼룩까지 다채롭게 적용되는 모습이다.
남성 컬렉션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스루, 망사, 레이스 등 과감한 소재의 등장이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은 더는 옷차림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듯 여성복에서만 쓰이던 소재들을 남성복에 적극 활용했다.
짧은 화이트 팬츠 위에 하늘거리는 반투명 플라워 패턴 레이스를 매치한 아크네 스튜디오.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는 포멀한 화이트 정장 재킷과 짧은 화이트 팬츠 위에 플라워 패턴의 레이스를 매치한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는 깔끔한 정장 재킷 안에 패턴 사이로 살결이 비치는 얇은 티셔츠를 착용해 절제된 관능미를 뽐냈고, 릭 오웬스(Rick Owens)는 핑크 드레스 위로 속이 그대로 비치는 노란색 조끼를 매치해 시선을 끄는 강렬한 원색 패션을 선보였다.
핑크색 드레스 위로 속이 그대로 비치는 노란색 조끼를 매치해 시선을 끄는 강렬한 원색 패션을 선보인 릭 오웬스
허리 잘록한 재킷, 짧아진 바지
남성 테일러 재킷도 젠더리스 트렌드를 반영해 여성복의 실루엣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신체 곡선을 따라가는 부드러운 실루엣부터 신체 사이즈나 체형에 맞도록 조절 가능한 스트랩 및 여밈 등 세심한 디테일이 적용됐다. 여성복에서 최근 부상한 짧은 기장의 재킷, 스커트 레이어드 팬츠 등도 눈에 띈다.
허리라인을 강조한 벨트와 부드러운 실루엣을 강조한 갤럭시와 강혁의 캡슐컬렉션.
삼성물산 패션부문 남성복 브랜드 갤럭시(GALAXY)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강혁(KANGHYUK)과 협업한 캡슐 컬렉션에서 짧은 기장의 재킷, 종 모양 실루엣과 하이웨이스트 팬츠로 구성된 ‘아웃 포켓 슈트’, 허리선을 강조할 수 있는 벨티드 재킷 등으로 젠더리스 남성복을 제안했다.
미니스커트만큼 짧은 과감한 쇼트팬츠 룩을 선보인 엠포리오 아르마니.
특히 남성 바지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4부 바지부터 미니스커트만큼 짧은 쇼트 팬츠까지 과감한 스타일이 돋보였다. 아크네 스튜디오,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은 언더웨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짧은 쇼트 팬츠를 선보였다. 배우 봉태규가 지난 7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가죽 재킷과 넥타이에 핫팬츠와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니삭스, 부츠를 매치하고 나타나 쇼트 팬츠의 유행을 실감 나게 했다.
이지선 교수는 “패션업계에 종사하거나 전공하는 남학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스루, 레깅스를 착용하고 다녔는데 최근엔 대중화하는 추세인 것 같다”며 “요즘엔 네일 아트를 하는 남성도 많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원문출처>
세계일보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321505754?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