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8명의 사망자와 196명의 부상자를 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국가 애도 기간 지정, 특별재난지역 선포, 국가 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 특별수사본부 설치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이제 참사의 비통함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를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하는 심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특별수사본부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입건한 피의자는 경찰 및 소방관계자와 박희영 용산구청장, 해밀톤호텔 대표 등이다. 수사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체로 현장 대응의 부실을 입증할 만한 직무 유기, 업무상 과실 등에 수사의 초점 맞춰져 있다. 정무적 부담과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책임 전가 방식이라는 비판은 논외로 하고서라도, 참사 수습 과정을 총괄하는 정부가 자칫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갤럽이 11일 발표한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정부의 사태 수습 및 대응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70%, 적절하다는 응답이 20%로 응답자 대부분 부적절하다는 시각이었다. 부적절하다고 평가한 응답자가 그 이유로 꼽은 것들은 ‘책임 회피, 늦장 대처, 사전대응 미흡, 경찰 인력 배치 문제, 안전 시스템 부재, 지휘체계 부실’ 등이었다. 아울러 이번 참사의 1차 책임 소재 관련 질문에는 대통령·정부, 경찰·지휘부청장, 본인·당사자, 행정안전부·장관, 용산구·구청장, 용산경찰서·서장, 전 국민·시민의식, 서울시·서울시장 순으로 나타났다.
언급된 답변들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 중 한 가지는 ‘수사와 처벌’이라는 심판론 만으로 이번 참사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임질 사람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잘못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똑같은 잘못이 벌어지지 않게끔 하는 책임을 마주하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징벌로 동력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안전 대응 시스템이 기능하고 작동하게끔 하는 것은 결국 각각의 역할과 의무를 지고 있는 일선 담당자들이다. 관습과 관행에 젖어 타협하기보다, 불편하더라도 상황에 근거하여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불편하더라도’라는 표현조차 필요 없을 만큼 ‘지극히 당연한’ 보고와 판단, 대응 체계로 거듭나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공 부분, 특히 안전 직결 분야 종사자 모두는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하며, 주어진 책임과 역할에 관해서도 재량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게끔 각급 기관의 장이나 책임자는 위계보다는 위기에 초점 맞춘 대응 탄력성을 강화해 나가는 방식으로 공공 혁신을 선도해야 한다.
변화의 추진동력은 우리 사회의 초연결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공개적인 방식으로 공론을 형성하고 정책환류를 도출해 내는 기능을 대응 시스템의 평가 기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얽히고설킨 한국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망을 통해 이번 참사의 트라우마가 확산·증폭됐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처럼 오용의 여지도 물론 있다. 그러나 초연결성에 근거한 안전 분야의 공공 혁신 아젠다는 가치 당위성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우리나라 디지털 정부의 민낯에서도 대두된다.
참사 당시 현장 대응의 핵심축이라 할 수 있는 경찰·소방·의료가 모두 소통할 수 있는 통신망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뒤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자며 1조 5천억 원을 들인 ‘재난안전통신망’이 구축되어 있었지만, 참사 당일 현장 대응을 위해 실제 사용된 시간은 195초에 그쳐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소방·의료 기관은 국가 통신망이 아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재난 상황을 공유했으며, 그마저도 경찰 측은 방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만약 얼마 전 있었던 카카오톡 서비스 먹통 사태마저 맞물렸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인명피해를 냈을지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동일 사안으로 반복 접수되는 시민 신고나 민원을 분류, 평가하여 대응 시스템의 단계를 설정하거나 위기 경보 발령에 반영하고 시스템 구성원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도록 현장 지침을 전파하는 것은 어려운 기술적 검토가 필요할지언정 불가능하지 않다. 되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쉽게 납득 가는 이 명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자조하게 만드는 이번 참사 수습에 대한 날 선 평가조차 귀담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참사를 수습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찰적 혁신으로 국민과 현장의 공감을 얻고 또 다른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다. 반쪽짜리 책임에만 몰두하면 잘못된 수습이 될 수 있으며, 잘못된 수습은 악습으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한기영 서경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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