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 상황에도 스타트업 성장세가 뚜렷한 나라가 있다. 높은 세금과 관료주의, 복잡한 행정이라는 ‘브라질 코스트’를 혁신으로 극복한 중남미 최대 스타트업 강국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인구 2억1000만명을 자랑하는 세계 6위의 인구 대국이다. 중위연령이 32세로 비교적 젊은 국가인데 2045년까지 꾸준히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대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용률은 세계 3위로 온라인 플랫폼에 친숙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산 정상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상(거대 예수상)이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2018년 브라질 최초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타이틀을 거머쥔 ‘99’를 시작으로 2020년에 6개, 2021년 1분기에만 2개의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 글로벌 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브라질의 유니콘 기업수는 15개로, 유니콘 기업수가 많은 10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유니콘 기업이 빠르게 늘면서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94억달러로 지난 5년간의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행정 비효율성을 성장 자양분으로
브라질의 스타트업 성장 원동력은 무엇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브라질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의 33%에 달한다. 또한 연방·주·시별로 세금의 관할 주체가 다르다. 세금 산정 방식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기업이 브라질 전역에 걸쳐 사업을 하려면 약 3000개의 세무 규정을 알아야 할 정도로 규제가 복잡한 나라다. 복잡한 노동법 탓에 인사관리를 잘못했다가 노동 관련 소송에 휘말리기도 쉽다. 브라질은 복잡한 행정 등 많은 규제 탓에 혁신이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브라질은 이러한 비효율성을 스타트업 성장의 자양분으로 발전시켰다.
브라질 스타트업협회(ABStartups)에 따르면 현재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은 2018년 기준 약 1만5000개로 대다수의 스타트업 기업은 대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고, 통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남부·남동부 지역에 밀집돼 있다. 브라질 전체 스타트업 기업의 41%가 상파울루주에 있는데 최근 스타트업 기업 설립 지역이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opolis) 등지로 점차 다양화되는 추세다. 협회 등록 기업의 72%는 25~40세의 청장년층이 주도하는 기업이다. 브라질의 유력 스타트업 분야로는 교육(에듀테크), 농업(애그테크), 금융(핀테크), IT 등이 있다.
대표적 유니콘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전문은행인 ‘누방크(Nubank)’가 있다. 지난해 12월 9일 뉴욕증시에 상장한 첫날 시총 476억달러를 기록하며 단숨에 남미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금융기업이 됐다. 누방크는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이민 초기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도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고, 매월 계좌유지비를 내야 하는 등 관료주의적인 은행서비스를 혁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창업의 원동력이 됐다. 누방크는 계좌 개설부터 카드 수령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계좌유지비도 없어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는 브라질 전역 5570개 도시에 약 40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워런 버핏이 찍은 핀테크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브라질의 관료주의적 은행 결제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2021년 1분기 기준 7개의 핀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차량호출 플랫폼 ‘99’는 일종의 콜택시 개념의 운송 애플리케이션이다. 한국 카카오택시처럼 사용자와 택시기사 및 개인기사를 연결해주는 회사다.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달러 상당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아이푸드(iFood)는 한국의 ‘배달의민족’과 유사한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이다. 모빌(Movile), 내스퍼(Naspers), 인노바 캐피털(Innova Capital)이 주도한 투자 펀딩 라운드에서 5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벤처캐피털 펀드들이 2014년 아이푸드를 인수한 모빌에 4억달러를 투자해 2018년 11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병원 방문이 부담스러운 환자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의료 플랫폼인 ‘클릭리피(Click Lifee)’도 있다. 병원 진료를 100%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의사 면담, 처방전 송부, X-레이 공유부터 의사소견서 수령까지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부동산 임대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인 퀸토 안다르(Quinto Andar), 에어비앤비나 알리익스프레스, 스포티파이, 우버 등과 같이 국경을 초월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이뱅스(Ebanx)’도 있다.
대기업·스타트업 간 협력 사례 많아
브라질은 창업에 대한 지원이 다양하다. 정부는 ‘스타트업 브라질’, ‘이노바티바 브라질(Inovativa Brasil)’ 등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간 기업들은 스타트업 경진대회인 ‘모비멘토 100 오픈 스타트업’을 통해 소규모 기업체에 기술·금융 지원을 한다. 스타트업 브라질은 2012년 민간의 글로벌 창업 지원 역량 강화와 건전한 창업 문화 형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주로 브라질 정보기술(IT) 업체를 대상으로 창업 자금 및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창업 3년 이하 스타트업 기업이 대상이다. 창업 분야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신속하게 터득하고 해당 분야에서 빠른 시일 내에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노바티바 브라질은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기원 후원 프로그램이다. 기술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스타트업 기업을 선발해 해당 분야 중견 기업과 연결해준다. 다양한 창업 관련 전문 강좌도 무료로 제공한다. ‘모비멘토 100 오픈 스타트업’은 혁신 지원 기관인 위노베이트(Wenovate)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사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보유한 100개의 스타트업 기업과 기술 자문 및 투자 의향을 가진 대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대기업·스타트업 기업 간 협력도 스타트업 성장에 발판이 됐다.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관심이 커지면서 스타트업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대기업들이 일반 투자자나 기업 후원자 역할 또는 프로젝트 인수를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참여하면서 스타트업들은 더 많은 재원을 확보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스페인의 통신기업 ‘텔레포니카’가 기술혁신 허브인 ‘웨이라(Wayra)’를 후원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브라질은 최근 농축산업의 첨단화가 빨라지면서 이 분야 스타트업인 ‘애그테크(Agtech)’도 성장세다. 대부분의 브라질 애그테크 스타트업은 농산업 기술 연구의 중심인 상파울루대 농과대학이 있는 상파울루주에 있다. 이 지역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애그로텍 밸리(Agrotech Valley)’로 불리며 산학협력 하에 활발하게 농산업 기술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브라질은 최근 복잡했던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면서 기업 투자 유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해 ‘디지털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법안을 승인하면서 각종 정부 제공 서비스를 하나의 통합된 디지털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업무 효율성도 개선될 전망이다. 다만 초고속 인터넷 등의 인프라 구축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원문출처>
주간경향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2204181332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