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韓日, 의학은 이인삼각으로 나아가야”[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조회 수 5131 추천 수 0 2021.12.31 09:20:53“의학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아니라 한 다리를 묶고 같이 가는 이인삼각 같아요.”
17일 공모전 ‘2021년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의 시상식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개최됐다. 나는 그곳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식을 마치고 우수상을 수상한 연세대 의대 본과 4학년인 이성환 씨와 한일 의학 교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 행사는 작년에 이어 외교부가 주최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공모전이었다. 올해는 모두 142건의 이야기가 모아졌고, 그중 10건이 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이 씨는 2019년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본의 야마가타(山形)대 의대에서 진행된 특별교류 프로그램에 연세대 의대생 4명의 팀장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소개해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나 역시 심사를 하면서 한일 의학도들의 교류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고, 그래서 시상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다가가게 됐다. 사실 두 나라의 관계가 어색해질 때마다 한일 교류의 필요성을 다시 묻게 되는데, 그 실마리가 의학이라는 분야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연세대 의대와 야마가타대 의대의 교류는 암 치료의 첨단 기술인 ‘중립자선치료기’를 연세대에서 도입한 게 단초가 됐다. 그 기술에 관한 정보 교환의 일환으로 2018년 국제교류협정을 체결하면서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립자선치료기는 야마가타대와 도시바에너지시스템스가 공동 개발해 ‘야마가타 모델’로 불리며, 일본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의료 시스템이다.
하지만 첫 교류 행사가 있었던 2019년 여름은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로 인해 한일 관계가 최고로 냉랭했을 때였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었고, 일본에 여행 가는 것도 눈치 보는 시기였다. 그래서 이 씨는 ‘괜히 행사에 신청했나’ 하는 생각도 했단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일본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완전히 깨졌다고 한다.
일본 측 관계자들은 공항에서부터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며 시종일관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꼼꼼한 시설 견학과 실습이 이어졌고, 야마가타대 총장, 시장, 현지사 등도 만났다.
하이라이트는 4명의 일본 학생과의 만남이었다. 일본 측 팀장과는 만나자마자 함께 목욕탕을 가게 됐고, 스스럼없고 솔직한 모습에 일본인에게 갖고 있던 이중적인 선입견도 깨졌다고 한다. 다소 서툴기는 했지만 영어로 소통하며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고민도 나눴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 이슈가 서로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사명감은 국가의 관계, 집단의 관계를 모두 초월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모두가 생명존중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실현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 한국과 일본이라는, 연세대와 야마가타대라는 생각보다는 의사로서의 유대와 결속을 강력하게 느꼈다고 한다.
“공부하다 보면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면이 많아요. 고령화가 진행되고 우울증이나 암 환자분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같다고 느꼈어요.” 이 씨는 두 나라의 의학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학은 결국 내가 마주하게 된 환자에게 어떤 최선의 치료책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아주 좋아져도, 아주 나빠져도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협력적 관계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일 교류는 쉬울 것 같으면서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한일 의학도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크고 묵직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코로나 위기 속에서 고생한 의료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코로나 시대만큼 한국의 가족과 일본에 있는 가족, 지구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병원을 가기가 조심스럽고,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이 씨는 다음 주에 있는 의사 국가고시를 치르기 위해 지금도 잠을 아끼며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비롯한 모든 의학도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들 모두가 한국의 의료인을 뛰어넘어 인류의 의료인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원문출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1231/1110279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