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스타일’을 한국에 유행시킨 작가 김성종의 소설 『제5열』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신문사 논설위원인 아버지가 특정 조직을 비판하는 사설을 쓴 후 의문의 납치살해를 당하고, 이를 추적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 평범한 회사원이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는 스토리다. 킬러를 고용한 보스 Z가 정부 고위인사라는 점이 반전이다. 제목이 ‘제5열’인 이유다. 이 소설은 1989년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내부의 적’이란 의미의 ‘제5열’은 스페인 내전에서 처음 사용됐다. 마드리드 공략을 지휘했던 장군이 “사방(四方) 공세 외에도 마드리드 내부에서 호응할 5번째 열(quinta columna)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역사에도 수많은 ‘5열’이 등장한다. 중국인들은 ‘5열’을 ‘네이젠(內奸)’이라고 부른다.
‘네이젠’을 처리하는 중국 특유의 방식은 장계취계(將計就計)다. ‘네이젠’을 역이용하는, 이른바 반간계(反間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曹操)와 주유(周瑜)가 맞붙은 적벽(赤壁)대전이다.
적벽 이전 조조는 승승장구했다. 그는 83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으로 몰려갔다.
조조 군의 약점은 수전(水戰)이었다. 이를 메워줄 카드가 투항한 장수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이었다. 이들은 조조 군에게 수전을 조련했다. 주유는 두 장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기회는 조조가 제공했다. 주유와 동문수학한 모사 장간(蔣干)이 주유를 회유해 투항시키겠다고 호언하자 조조는 승낙한다.
주유는 장간이 면담을 청하자 즉각 조조의 심계를 알아차린다. 그리곤 휘하 부하 전체를 동원해 성대한 주연을 베푼다. 술잔을 든 채 주유는 선포한다.
“장간은 조조의 신하다. 허나 이 자리에는 내 친구로 왔다. 주석에서 조조 얘기를 꺼내는 자는 참(斬)한다.”
주유는 한술 더 뜬다.
“군사를 이끈 이후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오늘은 옛 친구를 만난 특별한 날, 대취하려 한다. 취하지 않은 자, 이 막사를 나갈 수 없다!”
주유는 만취해 쓰러졌고 장간은 주유 옆에서 잠든다. 한밤, 주유의 부하가 막사를 찾는다. 주유는 그 부하와 몰래 대화한다. 장간은 귀를 세웠지만 ‘채모, 장윤’의 이름만 들었다.
주유는 다시 잠들고, 장간은 주유의 책상을 뒤진다. 거기서 채모와 장윤이 보낸 서신을 발견한다. 부하와의 대화, 서신 등 모두는 주유가 사전에 준비한 것임은 물론이다.
새벽, 주유의 막사를 빠져나온 장간은 부지런히 조조에게로 달려간다. 선천적으로 의심이 많은 조조는 즉각 채모와 장윤을 참한다. 결국 조조의 83만 대군은 전멸하고 조조 스스로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우리에게도 적벽대전이 진행 중이다. 승패는 오리무중이다. 고발과 폭로가 난무하는 탓에 누가 옳은지도 헷갈린다.
하나만 얘기하자. ‘대장동’ 논란에 휘말린 자기 당 후보를 향해 ‘이명박, 박근혜의 전철’을 거론한 후보가 있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우리 당 후보를 믿는다. 그러나 사실이 명백히 소명되길 바란다” 정도면 되는 것 아닌가?
대선이 건곤일척(乾坤一擲), 모든 걸 건 한판 승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금도(襟度)와 양식까지 버려선 곤란하다. 국민들은 선량(善良)을 선량(善良)한다.
대한민국 국민께 권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반간계를 키우자. 5열은 심판하고, 인격과 능력은 포상하자. 꼼꼼하게 따져 거짓은 가려내고 비전은 상찬(賞讚)하자. 대한민국 정치의 격은 결국 국민 손에 달렸다.
<원문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4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