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비율 57%, 국민 2명 중 1명이 창업에 관심을 가진 나라. 정권이 바뀌어도 스타트업 정책이 바뀌지 않는, 창업자 81%가 석·박사 학위 소유자로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우수한 연구인력을 가진 나라. 연구·개발 활동 세계 6위로 매년 약 600억유로(78조원)를 투자하고, 인공지능(AI)·무인 자동차 등 딥테크 분야 투자 건수 유럽 1위인 나라. 유럽인이 창업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카풀기업 블라블라카의 직원이 승객에게 사은품으로 머핀을 나눠주고 있다.
프랑스는 창업천국이다. 2018년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따르면 프랑스는 국민의 49%가 직원 10인 이하, 연매출 200만유로(27억원) 이하인 소위 ‘마이크로 기업’의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35세 미만 청년창업비율이 57%에 이른다. 창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정권 바뀌어도 창업육성은 쭉
프랑스가 창업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친기업적인 지원정책과 집권세력의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10년 넘게 꾸준히 이어온 스타트업 육성정책의 영향이 컸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자, 우파 정권이었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매출이 없으면 사회보장분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며 실직자, 학생, 퇴직자들에게 규제를 완화하며 창업을 유도했다. 이어 집권한 좌파정권 올랑드 대통령은 잠재력 있는 정보통신(IT) 및 하이테크 분야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인 ‘라 프렌치 테크’제도를 선보였다. 또한 이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매출액이 일정 금액을 넘어가지 않는 기업들에 각종 세금 혜택과 행정절차를 간소하게 해주는 ‘마이크로 기업제도’를 확대해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프랑스 정부의 IT 및 하이테크 분야 스타트업 지원정책인 ‘라 프렌치 테크’ 제도와 프랑스의 온라인 광고기업 ‘크리테오’의 로고(아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프랑스를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기 위해 ‘유니콘 나라’를 목표로 스타트업에 110억달러(12조7000억원)를 지원하며 창업육성 정책을 이어갔다. 프랑스 파리 13구 센 강변에 1920년대 철도기지 건물을 개조해 세계 최대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인 ‘스테이션F’를 설립했다. 여기에는 글로벌 기업 등 1000여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 파리 남동쪽 샤클레에 조성한 창업 클러스터 ‘클러스터 파리·샤클레’, 외국인 스타트업 유치 프로그램인 ‘라 프렌치’ 등 국제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실업자가 창업하면 수익이 날 때까지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프랑스 전역에 약 100만개가 넘는 ‘마이크로기업’이 생겼다.
2017년에는 노동법을 개정해 기업들이 해고와 감원을 보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타트업이나 신규 창업자들이 부담 없이 인력을 뽑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2018년에는 매년 세계 각국의 거대 글로벌 기업 대표를 초빙하는 외국인 투자유치 행사 ‘프랑스를 선택하라(Choose France)’를 만들어 2019년에 총 40억유로(5조5000억원) 상당의 투자 상담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컴퓨터 천재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에콜 42’도 스타트업 성장에 도움이 됐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카풀기업 블라블라카, 디지털 사진기업 포토리아 등 매달 1개의 스타트업이 이곳에서 배출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을 희망하는 외국인에게 비자 발급절차를 간소화하고 4년의 체류기간을 보장하는 ‘프렌치 테크 비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공식 지정한 100개 해외의 유망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세금 감면 및 행정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제공해 프랑스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렌치 테크 티켓’ 프로그램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힘을 보탰다.
2016년 파리에서 처음 개최된 세계적인 IT 및 스타트업 국제 전시회인 ‘비바테크놀로지’도 주목할 만하다. 2019년 5월 행사에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12만명이 둘러봤고, 스타트업 1만3000개, 투자자도 30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비바테크놀로지는 단기간에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로 발돋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창업 지원 결과는 실업률 하락
무엇보다 프랑스 스타트업 성장에는 다양한 지원제도의 영향이 컸다. 초기 혁신 스타트업 최대 4만5000유로(6200만원) 지원, 연구개발(R&D) 분야 투자 스타트업에 대한 세금지원, 12개월 동안 인큐베이팅 공간 및 멘토링 지원 등이 있다. 용이한 자금조달 환경도 성장의 발판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총 190억달러(약 20조9000억원)로 유럽에서 영국과 독일 다음으로 많았다. 2020년에는 영국과 독일이 스타트업 투자에 주춤한 사이 프랑스만 유일하게 증가하고 있다. 스타트업 엑시트도 2017년 45건으로 유럽 내 엑시트 규모로는 9% 수준이다. 특히 헬스케어, 영상분석, 전자상거래 분야 등이 해외기업에 인수되고 있다. 기술적 잠재력, 풍부한 인재풀을 보유한 프랑스 스타트업 환경이 점차 높이 평가받으면서 해외 스타트업의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이자 세계 최대 카풀 서비스 ‘블라블라카’는 5명으로 시작해 2018년 임직원 수 5000명으로 고용창출과 국가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온라인 광고기업 ‘크리테오’, 유명브랜드 재고정리 온라인 쇼핑몰 ‘방트 프리베’와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 OVH, 의료서비스 예약 스타트업 ‘독토립(Doctolib)’, 전문 사진작가들을 위한 마켓플레이스 ‘미로(Meero)’, 럭셔리 패션 리세일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Vestiaire Collective)’도 프랑스 스타트업이다. 2016년 창립해 현재 16만명의 고객과 연간 1억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건강보험서비스 판매 온라인 플랫폼 알란(Alan)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스타트업 성장의 원동력은 정권과 관계없이 이어져 오는 육성 및 친기업적인 규제완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2019년 창업기업 수는 81만개를 넘었고, 실업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다양한 혁신성장 정책과 벤처·스타트업 육성책이 마크롱 정부에서 결실을 거두면서 누구나 창업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원문출처>
주간경향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43131?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