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LH 혁신방안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모양이다. 지난번 발표된 제1차 혁신안은 직원 20% 감축, 특정 직원에 대한 고위직 승진 제한, 택지 입지조사 업무 등 일부 중요기능의 국토부, 지자체 또는 민간에의 이양 등이 핵심이다. 예고된 제2차 혁신안도 지주회사를 두거나 기능별로 분사를 시키는 안이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필자는 LH로 통합 전 한국토지공사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기에 그저 송구할 뿐, 이 장면에 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혁신방안이 격화소양(隔靴搔癢), ’구두 신고 발바닥 긁기‘식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생각에 잠시 거드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 조준된 총질이 멧돼지는 못잡고 땀 흘려 일하고 있는 애먼 사람을 잡을 수가 있기에.
무릇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은 문제에 대한 본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는 LH 직원으로부터 촉발되었으나 유관 중앙부처와 지방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정치인들도 실망스럽기는 오십보 백보이다. 투기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음을 내세워 LH문제를 물타기하려는 의도는 없다. 개발 정보가 너무 많은 기관과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며, 의사결정 과정이 산만하고, 처리 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개발 정보라고 한 묶음으로 말하지만 이를 단계별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 단계가 기초조사 단계이고, 다음이 주민 공람 공고 및 지자체와 중앙부처 협의 단계이며, 주택정책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업 예정지 지정 및 지정 고시가 이루어 진다. 조사 단계부터 살펴보자. 정부의 개발에 대한 양적 계획이 나오면 사업을 시행할 LH나 지방 공기업이 기초 조사에 나선다. 많은 경우 이미 지자체로부터 개발 후보지로 우선 고려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 온 곳이 우선 고려된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도 자신의 지역구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직 간접으로 의견을 주기도 한다.
주민 공람 공고는 차치하고, 지자체와 중앙 부처 협의시 거치게 되는 부서는 차라리 무관한 부서를 세는 것이 쉬울만큼 다수의 부서가 관여한다. 환경 교통 국방 교육 농림 문화재 방재 경제 등 엄청 많은 부서와 공직자들이 후보지를 살펴보고 소관 업무와 관련하여 문제가 없는지 검토한다. 간혹 문제점이 드러나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지구 경계가 합리적으로 조정되기도 하나, 드물게는 힘 있는 인물의 영향력으로 마땅한 이유도 없이 일부 토지가 제척되거나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공사에서 근무할 때, 기초조사를 위해 은밀하게 개발후보지 인근 중개소를 들렀는데도 이미 그 지역이 개발될 것이란 소문이 퍼져 있음에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주택정책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며, 또 한 번 정보 확산의 기회가 주어지고, 소문의 신빙성은 커진다. 참으로 많은 과정을 거치고 많은 기관과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다. 당연히 소요 기간도 만만치 않다. 짧아야 10개월, 길면 수 년이 걸린다.
이제, LH 혁신안이 조준할 과녁은 자명하다.
첫째, LH만이 아니라 정부 개발사업 절차와 관리 전반에 대해 혁신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둘째, 사업 예정지 업무를 최소 인원에 의해 처리하게 한다. 부처별 전담 인원을 전문적 필수인원으로 한정하고, 업무처리 실명제로 정보의 보안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한다. 셋째, 처리 절차를 대폭 축소한다. 기초조사에서부터 최종 지구지정 고시까지 각 단계별 업무처리 기한을 정하고, 순차적 처리가 아닌 동시 다발적 협의 내지는 일시 집합적 논의로 소요 기간을 최대한 단축 한다. 넷째, 주민과의 실질적인 협의로 민관 합동 또는 민간 주도의 사업추진을 확대해 나간다. 누구의 주택을 짓기 위해 다른 사람의 땅이나 집을 강제로 수용하는 일은 자유주의 경제원칙에도 맞지 않다. 주택 부족이 재앙이었던 시절, 불가피하게 채택한 강제수용에 의한 대대적인 공영개발 방식은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 합당하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정책적, 도시 환경적 고려 위에 예측 가능한 계획과 계획에 입각한 개발추진으로 개발사업이 투기정보가 될 수 없게 해야 한다. 도시계획이 무시된 개발 후보지 검토안만큼 투기꾼을 침 흘리게 하는 정보는 없다. 도시 발전에 대한 미래 예측성이 높아질수록 투기의 여지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지금 할 일은 이와 같은 조치이다. 조직축소나 기능재편은 투기 예방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공사 통합 이후의 공과(功過)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심도있게 논의할 문제이지 조급하게 내릴 결론은 아니다. 자칫 멧돼지는 못잡고 고운 사람만 잡는다. 발이 가려우면 구두를 벗고 가려운 곳을 집중하여 긁어줘야 발의 주인도, 보는 이도 시원해진다. 그래야 잘 달릴 수 있다.
<원문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802081845060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