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이끄는 박기태 단장
대학생때 만든 세계 대학생 펜팔 사이트
한반도 역사·문화 지킴이로 탈바꿈 시켜
유치원서 노년층까지 사이버 외교관 양성
한류 열풍 힘입어 외국인도 3.5만명 활동
국내외 배포 홍보물 100종 150만부 달해
아시아인 혐오·미얀마 참상도 적극 대처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인 '반크'의 박기태 단장이 22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중국의 역사·문화 침탈을 막는 데 나서고 있다”며 “국수주의로 흐르지 않고 세계주의를 지향하며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의 역사·문화를 해외로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이 억지로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고 만리장성의 위치를 평양까지로 늘린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마수를 드러낸 지난 2002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던 박기태(47·사진)는 ‘이러다 우리 역사·문화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낀다. 일본이 독도와 동해를 각각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둔갑시킨 데 이어 중국마저 역사 왜곡에 나선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 4학년 때 만든 세계 대학생 펜팔 사이트 반크가 새로 태어난 배경이다. 20년이 흘러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민간 공공 외교를 수행하는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으로서 외교부 등 우리 정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외국인 3만 5,000여 명을 포함해 15만 명 가까이 된다. 이 중 한 달씩 활동하는 한국홍보대사와 사이버 외교관이 5만여 명이다. K팝·드라마·영화 등 한류 열풍에 힘입어서다. 청소년과 청년이 주력이지만 유치원생과 회사원,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참여 폭이 넓다. 박 단장은 “대학 시절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반크 사이트를 열었으나 자연스레 일본과 중국의 역사·문화 왜곡을 바로잡는 민간 외교사절단이 됐다”며 “반크를 해외 펜팔과 국제 교류로 시작했기에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로 치닫거나 세계주의가 서양화로 매몰되지 않았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지구촌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실제 서울 성북구 보문동 반크 사무실에서 창고에 가득한 수십 종의 홍보물을 보니 세계를 품으려는 의지가 역력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5,000년 역사의 우리 인물·문화를 담은 다양한 엽서, 12개 언어로 번역된 독립선언서, 독립운동가 지도 등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도 중에서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역사·문화 유산을 소개한 것, 한국의 해양영토·대륙영토 지도, 거꾸로 본 세계지도 등이 눈에 띄었다. 특히 ‘기후변화·빈곤·질병·물부족·국제분쟁·여성차별에서 한국이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세계와 어떻게 소통하고 도움이 될까’ ‘통일한국이 되면 세계에 무슨 도움이 될까’를 설명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인상적이었다. ‘Hearbeating Korea, We inspire the World(가슴 뛰게 하는 한국, 우리는 세계에 영감을 줍니다)’라는 지도가 마음을 움직였다.
이 자리에서 박 단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20여 년 전에 펴낸 ‘월드팩트북’부터 보여줬다. 다른 나라 정부와 공공기관·교과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과 달리 한국은 바다도 아주 작게 만들고 독도를 다케시마·분쟁지역이라고 표기하는가 하면 동해는 일본해라고 썼다. 반크가 계속 수정을 요청해도 CIA는 요지부동이다. 그 결과 최근 반크가 교과서를 만드는 세계 주요 출판사 40곳과 세계 웹사이트를 분석하니 CIA의 논리를 따라 일본 편을 드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상당수 교과서도 중국의 논리에 따라 만리장성을 평양이나 압록강까지 그어놓았다. 박 단장은 “당시 CIA의 지도책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는데 여전히 수정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이나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따르는 CIA나 출판사, 포털 사이트, 국제기구에 수많은 문제 제기를 해 일부 시정도 됐지만 일본·중국의 주장이 판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한류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실제로 반크 회원들은 외국 공공기관이나 출판사·포털·방송사 등에 우리 역사·문화 왜곡과 오류를 시정해달라고 적극 요청해 약 700여 건을 바로잡는 성과를 거뒀다. 홍보 동영상을 600여 편 제작해 800만 번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한류 팬도 적잖게 동참했다. 반크가 그동안 찍어 국내외에 배포한 홍보물만도 100여 종, 약 150만 부에 달한다. 4억 명이 가입한 민간 국제청원사이트(체인지닷오르그)에 우리 역사·문화 왜곡에 관한 55개의 청원을 제기해 50만여 명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박 단장은 “중국이 2002년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이어놓았는데 이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라며 “나중에 북한에서 돌발 사태가 벌어지거나 통일한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큰 분쟁 거리가 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이슈”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본이 올여름 도쿄올림픽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왜곡하고 욱일기 응원도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독도를 가장 먼저 점거하고 군 기지로 삼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남북 공조가 필요한데 북한도 중국의 역사·문화 왜곡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 국내 보수 일각에서 반크를 반일·반중단체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각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는 “우리 역사·문화의 정체성 훼손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지만 결코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우리 청소년과 청년들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안중근 장군(대한의군 보병중장)의 ‘동양평화론’을 예로 들며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을 거쳐 대한민국에 덧씌워진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한중일 관계를 만드는 첩경이라는 소신도 피력했다. 중국의 패권주의나 일본의 군국주의를 막아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반크는 최근 몇 년 새 김치·한복·판소리·아리랑·삼계탕·설날 등을 자국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소위 ‘문화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 박 단장은 “중국 외교부나 바이두·게임에서 문화공정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구글 등 포털, 교과서, 박물관·미술관, 백과사전 등에서 왜곡된 것이 많은데 시정을 요청해도 잘 듣지 않는다"며 "물론 반크가 요청해 구글에서 김치의 근원이 중국이라고 돼 있는 부분은 시정했지만 아직 왜곡된 것이 많다. 한류 팬조차 우리 역사·문화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접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그는 “좌우, 보수·진보를 떠나 반크(직원 5명)는 정부 지원금을 거의 받지 않고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데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미래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지난해 중국어 관련 조항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한 것이 잘못됐다며 시정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을 밝혔다. 해외 교과서에 왜곡된 주장이 많은 데 대해 교육부·외교부·문화부·국방부 등이 잠 못 자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BTS 팬이 약 1억 명이나 되지만 과거에는 한류 팬도 없고 일본 등과 국력 차이도 커 어려움이 많았다”며 “우리는 사회주의인 중국이나 외피만 민주주의인 일본과 달리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조금만 힘을 모으면 국제사회에 크게 어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