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물이 되려면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한다. 법인도 세상의 흐름에 맞게 태어나야 얼굴 값을 한다. 지난 3월 19일 ’사단법인 한국 토지개발 전문 협회 (KOPA)‘가 창립되었는데, 이 협회의 탄생을 보며 든 느낌이다. 신도시 건설 예정지에 대한 LH공사와 정부, 지자체의 일부 공직자들의 투기행위로 온 나라가 충격과 실망과 혼탁함에 휩싸이고 있는 이즈음에 들려 온 KOPA의 창립 소식은, 난장의 쓰레기를 흩날려 버릴 청량한 한 줄기 선풍인 듯 다가 온다.
투기행위와 관련하여 관계 당국과 정치인들이 숱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효과적이도 믿음직스럽지도 못하다. 조사와 처벌에 대한 목소리는 크지만 실효성은 의심스럽고, 예방을 위한 방안들은 임기응변식 과도한 처방만이 운동회 닷새 지난 운동장의 비 맞은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그것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고민이 결여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공직자의 투기행위는 권한과 정보의 독점과 그 집행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한 채 대증요법식 처방에만 급급하고 있음이다. 차제에 공공이 주도해 온 개발패턴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에 출범하는 ’한국 토지개발 전문협회‘의 설립 취지문이 눈길을 끈다. 취지문은 종래의 사업방식이 사업지구 선정에서부터 보상 수용 방법과 기준 등 제반 사항을 토지주들과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공공부문이 은밀하게 일방적으로 결정 집행함으로써, 토지주와 주민들의 심대한 박탈감과 불신을 불러왔으며, 그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사업은 난항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음을 지적한다. 정직하고 선량하게 살아 온 대다수의 서민들을 낙담하게 한 공직자들의 투기행위도,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의 공영개발 방식이 안고 있는 제도적 맹점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사업 지구 지정을 위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보상과 도시설계 등 제반 진행 과정을 주민 등 이해 관계인과 충분히 협의하면서 투명하게 추진하였다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업지구 지정 공고일로부터 일정 기간 이전까지 일어난 예정 지구 및 인접 지역에 대한 부동산 거래와 이용 실태에 대한 관리를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튼 지금이야말로 공영개발에 대한 진지한 제도적 개선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을 하늘이 내어놓듯, 세상이 필요로 하는 단체, KOPA도 그렇게 태어낳는가 보다.
’한국 토지개발 전문 협회‘가 설립취지대로 공공개발 지구 내 토지주와 주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고, 관계 전문가들의 연구와 논의를 거쳐, 정제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세워 관계 당국과 사업시행 기관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피보상인 등 주민들의 이익과 성공적 사업수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동 협회는 창립 총회에서, 개발이익을 토지주 및 주민들과 공유하는 방안, 시행기관에서 주도하는 감정평가 관련 결정권을 중립된 기관에 위탁하는 방안, 사업지구 내 토지를 시행 기관에 양도할 때 부과되는 양도소득세 면제,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토지투기 관련 조사를 전 국가 및 지방 공기관으로 확대하여 조속히 청산할 것 등 네 가지 핵심 추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공영개발 지구 내 토지주와 주민들이 수년에 걸쳐 주장해 온 충분히 거론될 만한 의제이다. 당국에서도 건성으로 흘려듣지 말고 진지한 논의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KOPA도 그 설립 목적을 충실히 완수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협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유념해야 할 사항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협회가 협회에 대한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협조는 하되 전문적이고 독립된 목소리를 잃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도 역시 또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협회의 창립을 이끌어 온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 협의회(공전협)‘의 입장이 그것인데, 그들의 주장과 의견을 보다 전문적으로 정제하여 정책에 반영하고자 함은 의미 있는 노력일 것이나 그 활동에는 합리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여야 한다. 날 것의 주장이나 과도한 이기적인 외침이 걸러짐이 없이 협회의 이름으로 공표되고 제시되는 것은 아닌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정책 당국과 KOPA, KOPA와 공전협, 상호간의 우정 어린 설복과 협조가 필요하다.
공영개발 40년 역사에서 피보상인과 주민들, 그리고 사업시행 공공기관 사이에 민낯으로 부딪히며 접점 없이 각을 세워 온 시절이 끝나간다. 어디 한 곳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외쳐오던 토지주와 주민들에게 이제야 믿고 기댈 만한 든든한 친구가 생겼다. 공공기관에게도 말이 잘 통하는 멋진 파트너가 생긴 것이다. 토지주와 주민들의 이익과 공공의 정책목표가 함께 윈윈하는, 우리나라 토지개발 문화에 새 지평이 열리기를 온 국민과 함께 간구한다.
<원문출처>
e대한경제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3311733293710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