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미래국방기술창업센터 DX Korea 2020 추진위원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대명사가 되는 대표 이론이다. 1900년대 초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한 양자이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반도체 및 핵분열에 이르는 제1차 양자혁명을 이끌어 냈다.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제2차 양자혁명은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양국을 중심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 게 된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양자기술은 양자통신 등 큰 줄기를 통해 뻗어 나가면서 그 적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양자기술과 같은 이러한 와해적 기술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고전적 개념들에 대한 재개념(Reconceptualization)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으며 나아가 국방 분야와의 접목으로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와해적 기술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기능이나 속성으로 기존 기술 및 시장 진입장벽을 무력화시키는 급진적 혁신의 기술체계를 말한다. 초기 와해적 기술은 기존 기술들에 비해 오히려 성능과 수익성이 낮고 시장수요가 적어 불확실성이 크다. 당연히 기존 기술을 포기하고 성장성이 불투명한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 기술이 현재라면 와해적 기술은 미래와도 같다. 그리고 현재 와 미래가 싸우면 항상 현재가 승리하는 법이다. 하지만, 와해적 기술은 기존 선도기업들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시장 판도를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은 물론 전쟁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 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최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와해적 기술 발굴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즉, 와해적 기술혁신의 성공여부는 기술 차원의 문제이기 보다는 좀더 높은 차원에서 의 전략과 정책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특성을 가진다.
토마스 쿤은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은 누적된 지식의 축적이 아닌 비축적적인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정의한다. 최근 미국의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건은 비단 유인우주선 ‘크루드래건’만이 아니다. 국가 경제성장과 국방이라는 두 가지 사활적인 이익을 두고 국방과학기술 혁신이라는 전장에서 쏠아올린 조명탄과도 같다. 바야흐로 안보와 경제, 기술이라는 다차원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 즉 이른바 ‘뉴디펜스(New Defense)’ 시대다.
DX 코리아 행사 전경
전쟁은 태고부터 계속되는 인류사의 큰 전환점이자,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분쟁 해결 수 단이다. 예상하지 못한 시공간이 뛰어난 전략가를 만날 때 승리는 쟁취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승리와 패배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으며 현대 전쟁 또한 형태를 달리할 수 있으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전략가들은 시공간이라는 상수와 전략이라는 변수의 방정식을 풀고 자 노력한다. 그런데 만약 상수로 고정했던 시공간의 개념이 양자이론과 같은 와해적 기술을 통해 기 존에 통용되는 의미를 더이상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전쟁 방정식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현대 전략가들이 풀어야할 숙제다. 이렇듯 와해적 기술은 전략의 재개념이 불가피하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과 전략을 한자리에 모여 풀어야 할 시기다. 기존 군의 영역에 머물러왔던 시공간의 해석이 더이상 국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육해공, 사이버 및 우주공간과 민간의 영역이 이제 전장이자 삶의 터전이자 산업의 발생지이다. 와해적 기술은 기술, 경제, 국방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그 양날의 검이 우리를 향하지 않는다. 개방과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그리고 쿤이 지적하듯 이러한 지식의 축적은 과거의 연장선이 아닌 평행선을 달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선상에서 이루어짐을 인식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정책 및 전략 간 만남의 시도는 여러 국가에서 눈에 띄인다.
DX 코리아 행사 전경
중국은 첨단 기술을 발 전시키기 위해 ‘민군(民軍)융합' 전략을 가속화하기로 공표하였다. 민간 기업 과 국영 방산 기업들이 협력해 민간과 군사 분야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전략으로, 중국군의 현대화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 미국은 미 국방부 예하 국방혁신조직(DIU)을 통해 민간의 첨단과학기술을 국방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의 민간 첨단과학기술 획득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아태지역 내 동맹국들과의 첨단과학기술 협력을 추진하고자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민과 군의 언어, 그리고 과학기술과 정책의 언어는 사뭇 다르다. 언어의 다름은 생각과 인식의 방법 자체가 다름을 의미한다. 이를 해소하는 방안은 다른데 있지 않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함 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과정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오는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DX코리아2020에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육군이 처음으로 미래첨단과학기술관이라는 협력의 장을 마련한다. 과학기술계 콘트롤타워인 연구회는 와해적 기술의 첨단에서, 육군은 우주 및 사이버영역을 포함한 다영역작전에서 지상군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전략의 첨단에서 각각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둘의 만남이 미약하나마 와해적 기술과 재개념의 시작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소개
조동연 서경대 미래국방기술창업센터장(예비역 육군소령). 육군사관학교를 60기로 졸업하고 이라크 자이툰사단, 한미연합사령부, 외교부 정책기획관실, 육군본부 정책실, 미래혁신연 구센터 등에서 17년간 복무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CSIS 펠로우, 예일대 월드펠로우, 메릴랜드 컬리지파크 국제개발 및 분쟁관리센터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미동 맹재단 자문위원과 DX 코리아 2020 추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저로 ‘빅피처 2017’를 썼다.
<원문 출처>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41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