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jpg

권재욱(서경대 특임교수)


봄은 들판으로 오고, 가을은 하늘로 온다.

 

산에 들에 파릇파릇 돋아나오는 냉이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듯이, 하늘이 한결 맑아지고 점점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면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 가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아스라이 높이 저 태고의 빈 공간에서 잉태된 고고한 기운이 서서히 내려와 탁해진 망막을 제치고 눈에 든다. 깊고 푸른 하늘이다. 눈이 부시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가을 하늘, 비록 지금 홀로이고 우울이 어두운 장막으로 가로 막아도 삽상한 공기와 더불어 내려와 고요히 안기는 선한 계시는 거부할 수 없다.

 

끝자락 더위에 지친 태양이 서편 하늘로 비껴나고 어둠이 찾아들면 계절은 더욱 빛난다. 가을의 밤하늘은 항해한 적 없는 바다처럼 웅숭깊고 신비롭다. 서늘한 바람결에 뭇별들이 있는 대로 몰려 나와 암청색 하늘을 영롱하게 가득 채운다. 샛별, 견우와 직녀, 조랑말, 물고기, 고래 등 예쁜 우리말 별들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 페가수스와 같은 신화 속 영웅들의 이름표를 단 별들도 자태를 뽐낸다. 일일이 다 감별하지는 못하여도 그러려니 하고 보면 뭐 대충 그렇게 보인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해가 진 첫 어둠의 서쪽 하늘에 반가운 친구처럼 살짝 나타나 눈에 띄게 빛나는 별이 샛별, 곧 금성이다. 밤이 깊어지면 놀기 좋아하는 바람둥이처럼 사라져선 보이지 않다가, 새벽이 되어 슬몃 다시 나타나 동쪽 하늘에 반짝 빛을 발한다. 금성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는 달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만일 금성에 앉아 해를 본다면 해는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게 된다. 오래, 아주 오래 살다보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샛별이 금성의 애칭인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금성에는 인물값 하느라고 별명이 몇 개 더 있다. 그중 하나는 개밥바라기이다. 어느 가난한 집에 강아지가 살고 있었다. 남의 집에 일하러 나간 주인이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때가 많았다. 배가 고픈 강아지는 빈 밥그릇을 핥으며 하릴없이 서쪽 하늘에 막 떠오른 별을 보고 멍멍 짖기만 했다. 이때부터 초저녁 서편 하늘에 뜬 금성을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 ‘바라기는 작은 그릇을 가리킨다. 저녁 무렵 시골길을 지나다가 하늘을 보고 짖어대는 강아지라도 볼라치면 배가 고파 그런 것이니 선처를 바란다.

 

금성을 계명성(啓明星)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선승(禪僧)들이 수년을 용맹정진하던 중, 어느날 새벽 산사의 뜰에 나섰다가 동편 하늘의 밝은 별을 보고 문득 도를 깨친 분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긴 나도 샛별을 보고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다. 한때 동료들과 카드놀이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 적이 있었는데, 판이 벌어졌다 하면 밤을 새우기가 예사였다. 한 번은 적지 않은 돈을 잃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소변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 간이 화장실의 얼기설기 엮은 울타리 너머로, 동이 트려는지 희뿌연 하늘에 유난한 별 하나가 푸른 빛을 비추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별이 말을 건넸다. “,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몸이 부르르 떨려 온 것이 소변 뒤의 체온 저하 탓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날 새벽에 만난 샛별과 함께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박혀, 나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별이 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저 하늘에는 빛나는 별, 내 마음 속에는 도덕률이다.” 이마누엘 칸트의 별이다. 진리, 정의, 도덕과 치열하게 싸움질하던 젊은 시절, 엄청난 덩치로 나타나 겁을 준 이가 그였다. 그는 패기있게 도전한 나를 번번이 몇 합 못 버티고 나자빠지게 했지만, 한 구절은 늘 달라 붙어 치근대며 사사건건 참견했다. 그는 반복한다. 당신의 행복은 상관하지 말고, 당신의 의무를 행하라. “본디 도덕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너의 행위의 준거를 이해(利害)에 두지 말고 옳고 그름에 두라. 예나 지금이나 도둑도 잘만 훔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의 속삭임은 어느 노름꾼의 샛별처럼 나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러고는 눈치보며 힘들어 하는 나에게 그나마 쉬운 원칙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그 짓을 하게 된다면 공동체 생활에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말라고.’

 

별을 이야기하면서 윤동주를 빼면 서운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땅 위 따를 만한 모범도, 참된 정의도 찾기 힘든, 마음 둘 곳 없는 많은 이웃들의 마음처럼계절이 지나가는 하늘로 가을이 내려 온다. 동주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순결한,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원문 출처>

건설경제신문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2009101700063740874

List of Articles
Lis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홍보실 2022-10-07 74103

[데이터로 본 대학] 2020 대입 경쟁률, 서강대 23.22대 1 ‘최고’ file

‘인서울’ ‘수도권’ 향한 뜨거운 열기…수도권 경쟁률 타 지역 ‘압도’ 전년 대비 ‘하락’, 학령인구 감소 탓…올해 전망도 ‘어두워’ 지난해 실시된 2020학년 대입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대학은 어디였을까. 수시모...

서경대, 교육혁신처 신설, 운영 file

대학교육의 질 제고와 대학경쟁력 강화 위해…학사운영 효율화 위한 대학 직제개편도  서경대학교(총장 최영철)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개혁,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른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등 교육환경 변화에 능동...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 칼럼:[시론]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file

권재욱(서경대 특임교수) 봄은 들판으로 오고, 가을은 하늘로 온다. 산에 들에 파릇파릇 돋아나오는 냉이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듯이, 하늘이 한결 맑아지고 점점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면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공부와 취업, 한 번에 잡는 ‘슬기로운 대학생활’ 기획시리즈 <16> 미용예술대학 헤어메이크업디자인학과 편 file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 되면서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그동안 정상적인 대학생활에서 누리던 전공 관련 학습 노하우나 진로 및 취·창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 등을 접할 수 없어 어...

[대입 내비게이션 2021 수시 특집] 829명 모집, 적성고사 선발 306명으로 확대 file

서경대는 단과대학 규모의 미용예술대학을 신설하고 새로운 교육 방향을 제시하는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서경대학교는 2021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정원 내 모집인원 1269명 중 829명을 선발한다. 이번 수시모집에서 달라진 점은 적...

공부와 취업, 한 번에 잡는 ‘슬기로운 대학생활’ 기획시리즈 <15> 예술대학 음악학부 편 file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 되면서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그동안 정상적인 대학생활에서 누리던 전공 관련 학습 노하우나 진로 및 취·창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 등을 접할 수 없어 어...

서경대 교육혁신처, ‘2020학년도 비교과 프로그램’ 공모전 개최 file

학우들과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 공개모집 9월 7일(월)부터 10월 4일(일)까지 4주간 진행 서경대학교 교육혁신처는 ‘2020학년도 비교과 프로그램’ 공모전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비교과...

공부와 취업, 한 번에 잡는 ‘슬기로운 대학생활’ 기획시리즈 <14> 인문과학대학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일어전공편 file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 되면서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그동안 정상적인 대학생활에서 누리던 전공 관련 학습 노하우나 진로 및 취·창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 등을 접할 수 없어 ...

2020 외국인유학생을 위한 정부 지원정책 모음 file

정부초청장학생(GKS) 확대...유학생 다변화 추구  세계 각국은 유학생 유치를 위해 학습능력 위주의 평가방식을 수정해 다양한 선발기준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유학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는 국가적...

[진세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칼럼 : 漢字, 세상을 말하다] 瑕疵<하자> file

玉(옥)은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玉에 티’라는 격언은 玉의 완벽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瑕疵(하자)는 옥에 있는 欠缺(흠결)을 가리킨다. 지금은 결점, 고질병이란 의미로 두루 쓰인다. 唐(당)대 王勃(왕발)과 南宋(남송) 文...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