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잘못된 폭력문화는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과거의 왜곡된 군사문화와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군이 발족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군이나 일본군 출신들이 충원되면서 일제의 억압적 군 문화가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이후 오랜 기간 이른바 ‘군부 통치 시대’를 거치면서 군사문화가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군대에서 장교나 지휘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병 집단의 고참 병사 역시 중요한 존재다.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군대의 특수성 때문에 전시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상명하복, 위계질서, 서열과 계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형법에 별도로 항명죄를 두어 엄격히 다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군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갑질’이나 ‘폭력’을 용인하는 데 있다. 그동안 우리 군은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병영 부조리가 점차 사라지고 군내의 폭력 행위가 사실상 근절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국민으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핵심적 역할의 몫은 결국 장교와 지휘관에게 있다. 이들이 올바른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한다면 굳이 계몽적·제도적 노력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리더십이란 조직체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자의 역량이며, 단체의 지도자로서 그 단체가 지니고 있는 힘을 맘껏 발휘하게 하고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내는 자질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리더십과 유사한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헤드십(headship)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조직은 지위와 서열을 중시한다. 이러한 조직의 수장이 주어진 권한에 의해 행사하는 것이 일종의 헤드십이다. 그러나 헤드십을 행사한다고 해서 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헤드십이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리더십에서 구성원들을 움직(협력)이게 하는 힘(능력)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르게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상급자)가 직권의 힘으로 조직 구성원의 행동을 강제로 이끌게 될 경우 자칫 헤드십의 양상을 띠어 독주성과 일방성의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이러한 강압적 지휘는 자칫 면종복배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갑질’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소지가 많다. 오늘날 조직관리를 위해서 감성 리더십, 공유 리더십, 경청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등이 각광 받는 이유다.
우리 군의 장교와 지휘관들도 이러한 리더십과 헤드십의 차이를 잘 인식함으로써 군사문화 전반을 혁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잘못 투영된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왜곡된 군사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붙이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원문 출처>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00717/1/BBSMSTR_000000010052/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