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두번째부터 박상병 정치평론가, 좌장을 맡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성봉근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얼굴만 돌리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모함하는 행태가 만연한 일상이 되었다. 까페마다 음식점마다 대화의 주제는 온통 타자를 향한 험담뿐이다. 행복, 아이디어, 혁신, 낭만, 사랑, 인생 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뒷담화가 가득하다는 것은 내면이 비어있음을 뜻한다. 경제적으로 몸집이 커졌는지는 모르나 한국사회는 지금 정신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삭막한 사회다. 서로에게 분노하고, 서로를 지옥으로 여기는 한국사회.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가.
교수신문과 의회신문은 ‘뒷담화와 모략의 시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지난달 19일 서교동 북살롱에서 소박한 좌담을 가졌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이 진행을 맡고, 박상병 시사평론가, 성봉근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모여 한국사회의 불편한 내면, 삭막한 풍경들을 진단해 봤다.
● 좌장 김만흠
오늘 주제가 조금 특별하다. 뒷담화와 모략이 횡행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을 해보는 시간이다. 우선 오늘의 문제의식과 한국사회 현실을 개괄적으로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할 듯 하다.
■ 이경선
문제가 없는 시대란 없겠지만, 2020년 현재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위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도 사회도 온통 ‘진영 줄서기’, ‘각자도생’, ‘이익 챙기기’로 치닫고 있다. 문화 분야마저도 돈벌이에 물들고 창의성은 상실했다. 좌우 진영 간의 편 가르기 속에서 중간계의 다수 서민들은 기댈 곳을 못 찾고 부유하고 있다. 개혁적 목소리를 내야 할 중도개혁적 지식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 되는 것, 공공기관 계약직으로라도 들어가 '1등 시민 계급'이 되는 것이 꿈인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남과 비교하며 좀 더 안락함과 우월감을 느끼는 위치를 점하기 위해 서로 천박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됐다.
■ 정재룡
사회 곳곳에서 못 살겠다는 아우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남북 관계는 전쟁 전야로 치닫고 있다. 신지역주의라 할만큼 동서 지역 간 대립은 다시금 심화되고 있다. 정부 별정직 정무직 공무원 일자리 차지하기 경쟁에 미친 진영패거리 정치 언저리언들의 전횡은 내전 상태라 할 만하다.
위선이 공정과 교양으로 둔갑하고, 상식과 법치주의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역대급 수준으로 벌어졌으며, 실업수당 신청, 폐업 신고, 공실률, 복권 판매액은 집계 이래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전국에 걸쳐 일가족 자살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정치권과 오피니언 리더 그룹의 행태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행태가 만연해 있다. 상식의 문제이고 사회 윤리의 문제인데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집단적인 위선 행위들이 연일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법치주의의 틀 조차도 곳곳에서 붕괴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사회는 지금 총체적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
■ 성봉근
최근 우리 사회는 각종 갈등에 대한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매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을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시도하기보다는 성급하게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앞서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하며 상호 설득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접근을 하는 패러다임이 만연해 가고 있다. 이는 신문이나 방송 등의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서 정보화 사회에 이르러 SNS나 홈페이지 등의 강력한 전파력을 매개로 하여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소송만능주의나 실력행사 등 극단적인 방식의 해결을 지향해 오는 경향이 있다.
■ 이경선
사회적으로 조금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랑을 담은 사진과 자기 인맥 자랑뿐이다. 일반인들이야 인스타그램 안에서 ‘나 행복해요’ 하고 자랑질이든 행복감이든 충만해할 수 있겠지만, 공직자, 연구자, 정치인, 교수들은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SNS 행태만 놓고 보더라도 한심스럽다. 민생의 불편과 피폐함을 조명하지 않고 ‘나 국회의원 됐어요’, ‘나 좋은 유럽 여행 왔어요’ ‘나 지금 행사장 왔어요. 나 회의하는 모습 근사하죠’, ‘나 방송 나왔어요’ 하면서 자기 자랑질하기 바쁘다. 모 남성 의원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찍은 사진만 연속해서 올려댄다. 모 여성 의원은 자신의 미모(?) 자랑 포스팅만 내내 하다가 임기를 마쳤다.
위선과 허영, 가식적인 대화로 가득한 인간관계와 처세 스트레스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 뭘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사회에 실망한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자기 피안의 세계를 찾으려 하고 있다. 힐링, 워라벨, 카렌시아, 욜로, 새로운 아나키즘 기조, 저녁이 있는 삶, 연결되지 않을 권리(언텍트) 등이 사회 키워드로 회자되어 온,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각박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소시민들의 갈망이 팽배해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정재룡
지금은 대중 민주주의 시대이다. 대중 독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제왕적 총재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거물 정치인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일반 대중 다수가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SNS가 활성화되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갑툭튀 ‘MB 아바타’는 SNS에서의 모략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정당의 공천이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고 당원은 동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당원이 공천을 주도하는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고 당 대표마저도 당원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것은 이러한 상향식 공천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조국 사태는 일반 대중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열린민주당이 별다른 명망가도 없이 3석을 차지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모략이 횡행하는 것은 이런 시대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 정치적 승리를 위하여 일반 대중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하여 단순한 험담을 넘어 모략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어느 조직이나 활동 영역에 관계 없이 사회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일반화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에 파벌이 있을 경우 다면평가가 파벌의 모략 때문에 왜곡되기도 한다.
<원문 출처>
교수 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4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