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은 하나의 예술이자 스포츠'…헤어아트로 인정받고 싶어
권기형(58·미용) 대구시 달구벌명인이 22일 대구 수성구 두산동에 위치한 자신의
헤어샵에서 헤어 디자인을 하고 있다.
“처음 미용사로 일할 때 동물원 원숭이 보듯 저를 봤어요. 인사를 하면 ‘엄마야’하고 도망치기도 했죠”
(사)대한이용사회 국가대표로 발탁돼 10여 년 동안 각종 세계무대를 휩쓸었던 권기형(58·미용) 대구시 달구벌명인이 미용사로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전했다. 한때 미용사 국가대표 선수·지도자로서 세계로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았고 현재 후학양성과 ‘헤어아트’(머리카락으로 만든 작품) 예술인으로 미용업계에 한 획을 그어나가고 있지만, 첫 시작은 동네 사람들의 구경거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1987년 7월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권 명인은 대구 수성구 상화로에 자신의 가게 문을 열 당시, 미용실 창문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던 수많은 동네 사람들의 눈을 떠올렸다. 남성이 미용 일을 하는 것을 두고 괄시나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 남성 미용사의 존재 자체가 희귀했기 때문이다.
실제 권 명인도 “큰 누나로부터 미용을 처음 권유받았을 때 솔직히 ‘미쳤느냐’고 대답했다. 1980년대 당시에는 남자가 미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며 “누나가 ‘이제 남자가 해도 괜찮다’고 설득해서 학원을 등록해 다녔고 이후 미용에 재미를 가지게 됐다.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국내 헤어월드컵 관전 후 국가대표 선수·지도자로 20년 맹활약.
권 명인에게 미용사 국가대표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기술을 갈고 닦아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만 키웠다. 그러던 중 헤어월드컵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새로운 목표를 품게 된 계기다. 그는 “1990년대 말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헤어월드컵이 열렸는데, 우리나라에도 국가대표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각 나라 국가대표가 와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사람 머리가 저렇게 변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길로 저것(국가대표)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길은 험했다. 스승 없이 독학으로 국가대표 수준까지의 미용기술을 키워나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실력을 끌어올린 이후에는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권 명인은 “모든 게 정치적으로 가면 힘들다. 숲을 볼 때는 서로 받쳐주는 것 같은데, 숲보다 높이 솟으면 바람을 많이 맞는다”며 “꼿꼿하게 버텼고 우여곡절 끝에 2000년대부터 국가대표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권기형 명인(왼쪽 두 번째)이 2001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당시 모습.
지난 2001년 오스트리아 유럽 비엔나 챔피언십에 권 명인이 첫 출전 했다. 세계이·미용협회(OMC, Organization Mondial Coiffure)가 주최한 세계대회다. 61개국에서 3명씩 대표로 나서서 자웅을 겨루는데, 권 명인이 출전할 당시에는 총 160명의 국가대표가 참가했다.
권 명인은 처음 출전한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앞서 미용사 선배들이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OMC 주최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 년 후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릴 당시 우리나라 미용사 국가대표도 4강이라는 기적을 일으켰다.
권 명인은 “대륙(아시아)에서 1등하고, 전 세계에서 4등을 했다. 그때 우리도 4강만 하면 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정말 소원이 이뤄졌다. 기적이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국가대표 미용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권 명인은 2014년부터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대표 지도자를 맡았다. 201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에서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권 명인은 “첫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4연패를 달성했다”며 “큰 업적이자 영광이다”고 힘줘 말했다.
권기형 명인과 미용국가대표단이 2019년 OMC 헤어월드 프랑스 파리대회에서
4연패를 달성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헤어디자인도 세계적인 종목…스포츠 올림픽 수상자와 대우 같아.
세계대회 수상경력을 자랑하던 권 명인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미용에 대한 국내 관심도가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대회뿐만 아니라 기능올림픽에서도 정상을 많이 차지했지만, 국가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인 홍보가 없어 ‘헤어 디자이너’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제대로 알릴 기회가 적다고 토로했다.
권 명인은 만 23세 이하 미용사가 출전하는 기능올림픽은 스포츠에서 메달을 딴 것과 같은 대우를 받지만, 이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관심이 적은 점을 특히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기능올림픽에서 정상을 많이 자치했으나 이제는 힘들어질 것”이라며 “중국이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인데, 국가대표 미용팀의 지도자가 되면 그 국가의 고위 공무원급이다. 중국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어 우리 스스로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능올림픽에서 수상하면 국가연금부터 훈장까지 스포츠에서 메달을 딴 것과 똑같은 대우를 받지만, 홍보창구가 없어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며 “우리도 국가적인 관심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명인은 국가대표 미용사라는 목표를 둔 이들에게 기능올림픽 준비를 우선 순위로 내세웠다.
자격증을 취득한 미용사와 대학에서 미용을 전공한 미용사들도 있지만, 기능올림픽을 준비했던 미용사가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가장 빨리 습득한다는 것이다.
권 명인은 “기능경기대회를 마친 미용사들과 일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대학을 나온 미용사 간에 격차가 있다”며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체계부터 잡히기 때문인데, 미용을 꿈꾼다면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또 “국내에 대구광역시장배 미용경기대회 등 각 지자체에서 열리는 미용대회가 있고,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IKBF)과 같은 국제대회가 있다”며 미용사 꿈을 키우는 이들이 향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시했다.
권기형 명인 만든 헤어아트 작품
△재능기부봉사와 후학양성 그리고 예술가의 꿈을 향해 달려갈 것.
권 명인은 현재 대한미용사회 대구시협의회장·수성구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미용사회 국제분과위원장과 이사까지 맡고 있다. 서경대학교 교수로 헤어디자인을 교육하고 각 지역을 돌며 재능기부봉사와 후학양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병행한다. 앞서 국가대표 미용사, 미용월드컵 코치·감독, 지난 2008년부터 12년 동안 기능올림픽 헤어디자인 전문 지도자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권기형 명인의 헤어아트 정물화 작품.
권 명인은 “현재 국가대표 미용사 코치 등 지도자로 활동하는 이들도 대부분 저를 거쳐 간 제자들인데, 이제 국가대표와 연관된 일은 제자들에게 물려주고 자문 정도만 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스로 말하기 그렇지만, 전국에 있는 미용인들이 저를 많이 사랑해준다. 전국 11곳 지역에 팬클럽도 있다”며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 사랑을 돌려줄 때인 것 같다. 가진 재능으로 기술전수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민화작품을 만들어 2000년대 후반부터 전시회를 열었던 지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만의 헤어아트를 발전시켜나갈 의지도 드러냈다.
권 명인은 “봉산갤러리에서 첫 작품전시회를 열 때 헤어아트를 예술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며 “당시 알고 있던 대학교수의 이름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는데, 지금은 경력이 쌓여 어디서든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예술계와 학회에서 헤어아트가 인정을 받고, 다양한 헤어디자인 기술을 연구해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권 명인은 “머리카락으로 예술을 한다는 것이 아직 예술 쪽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며 “과거 미용이 먹고살기 위한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예술이자 스포츠다. 다양한 활동으로 예술계와 학회에서 인정받도록 노력하고 나름대로 연구한 기술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원문 출처>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