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태연이다’ 이 문장을 자서전의 첫 페이지로 장식하고 싶어요.”
국내최고의 엘리트패션모델 등용문은 자타공인 SBS엘리트슈퍼모델선발대회이다. 가끔 명칭이 바뀌지만 ‘슈퍼’ ‘모델’이란 이 두 키워드는 변경 불가다.
슈퍼모델은 보통명사에 가까워 누구나 이 호칭을 갖다 붙일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대회 입상자에 한해 슈퍼모델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소라, 주정은, 이선진, 박둘선, 이화선, 김태연, 김효진 등을 슈퍼모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슈퍼모델 출신들의 모임은 ‘아름회’‘슈퍼모델골프단’이 있다.
아름회는 희귀ㆍ난치병 어린이, 입양되기 전의 미혼모 자녀, 중증장애 아동,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의 돌잔치, 유기견 돕기 등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슈퍼모델골프단 역시 베트남 고아 및 장애인 지원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슈퍼모델 대다수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름은 한 인격의 존재 가치와 삶 그 자체를 나타낸다. 진정 강한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이를 우리는 자긍심=자기긍정이라고 부른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의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는 법이다.
▲ 슈퍼모델 입상자 모임인 아름회는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 그리고 유기동물을 위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슈퍼모델 김태연, 김효진, 김도연.
■ 이름, 자긍심=나를 존중하기에 남을 존중할 줄 안다
슈퍼모델 김태연도 마찬가지이다. 김태연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모델연기전공ㆍ예술교육원 모델학전공, 한국모델협회 이사, 아시아모델페스티벌조직위원회 조직위원, 국제모델대회 심사위원, 아름회ㆍ슈퍼모델골프단 일원으로 모델활동ㆍ후학양성ㆍ사회공헌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데뷔 때 이름이 같은 선배 모델이 있었어요. 그래서 몇몇 선배들로부터 이름을 바꾸라는 압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이름인 태연이 좋아요. 제 이름 계속 쓰면 안 돼요’라고 되묻곤 끝까지 버텼죠. 결국 나중에는 선배들이 ‘이쁜 태연’ ‘착한 태연’이라고 별칭을 붙여주시며, 그 선배(이름이 같은)와 구분을 짓더라고요.”
당시 모델계는 군대처럼 위계질서가 강했다. 한때 KBS2 ‘가족의 품격-풀하우스’에 출연한 모델 이혜정이 “모델 선배들이 화가 나면 화장실로 집합하라고 한다”며 엄격한 모델계 군기 문화를 전해 화제를 낳은 적이 있다.
김태연의 이때 행동은 자칫 속칭 ‘왕따’ 부를 건덕지(*건더기)가 충분한 항명과도 같았다.
어찌 보면 예명은 연예계뿐만 아니라 모델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다. 평범한 본명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직업인으로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일상 속으로 돌아갔을 때의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주술적인 의미에서 운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한몫한다.
그러나 이런 연예인들 중 일부는 목마른 공허감을 덮어쓴다. 자기 자신을 대면해야 하는 밤 시간이 두려워 술ㆍ마약 혹은 쾌락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
반면 김태연 같은 슈퍼모델들에는 자긍심이 강한 유형들이 많다. 자긍심이란 자만 오만 교만이 아니다. 절대 말과 행동에서 표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존중하기에 ‘남’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지켜본 김태연은 10년지기일지라도 노력한 사람 앞에서는 말부터 조심하고, 오래가는 관계일수록 선을 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일단 소심할 정도로 고민을 한다.
계획이 서면 ‘어, 고민한 것 맞나?’라고 여겨질 정도로 단순 과감하게 행동한다.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뭐, 잘됐네, 뭐 그럴 수도 있지’하는 자기긍정을 그녀에게서 보게된다. 책에서 배우는 꾸밈이 아닌 ‘설령 실패해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자연스런 자기긍정’을 말이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을 아는 자식은 자긍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 ‘태연’이란 두 글자에는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 누구보다 그리운 아버지의 향기가 담겨있다.
▲ 김태연 등 슈퍼모델들은 나를 존중하기에 남을 존중할 수 아는 아름다운 자긍심을 품고 있다.
이는 책에서 배워 흉내내는 것이 아닌 모델로서의 소양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움이다.
사진은 김태연이 교수로 재직중인 서경대 공연예술학부 모델연기전공의 실전 워킹&퍼포먼스 수업모습.
■ 부모는 이름에 사랑의 주술을 담는다
“우리 아버지는 자상하셨어요. 여기에 키 크고 체격 좋은 미남이시다 보니 인기도 좋았어요. 가정에 충실하시면서 우리들과 자주 놀아주셨죠.”
김태연의 부모님은 충남 금산에서 소박한 식당을 운영했다. 아버지 고(故) 김판귀 씨는 가족에게 한없이 지순한 사랑을 바치던 순둥이로 부인 박정숙 씨와의 슬하에 3남매(기연ㆍ태연ㆍ태겸)를 두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그녀의 행동주의적 교육신념은 그녀가 아버지를 보며 느낀 가르침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우리 남매들을 데리고 캠핑을 자주 하셨죠. 아버지와 있으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이 나오는 마냥 재미있는 일의 연속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떼를 쓰면서까지 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특히 낚시를 좋아하셨죠.”
낚시와 관련한 황당한 에피소드가 있다. 남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때일이었다. 느닷없이 남동생의 담임 선생님이 식당으로 찾아왔다.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 어머니에게 우물쭈물 담임선생님 왈(曰)
“태겸(*남동생)이가 아버지의 직업란을 ‘낚시꾼’으로 해서 찾아왔어요.”
참고로 ‘꾼’이란 명사는 부정적인 뜻을 갖거나 그것으로 부정적 결과가 빚어지는 명사에 붙어, 그런 일이나 그와 관련된 행동을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사람이란 사전적 뜻을 갖는다. 도박꾼, 사기꾼 등이 있지만, 낚시꾼처럼 광(狂)자와 동시에 쓰이는 단어는 드물다.
햇병아리 젊은 교사의 머릿속은 ‘문제 가정’‘예비 플라잉보이(?)’ 등 다양한 상상으로 가득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녀가 남동생에게 “태겸아, 낚시꾼은 직업이 될 수 없어”라고 타이르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남동생에게는 아버지의 낚시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고 위대해 보였을 것이다.
“한번은 엄마에게 물었어요. ‘아빠가 자주 놀러 다녀 엄마 힘들었지’ 하고요.”
그녀의 어머니 말은 간단했다.
“힘들었지. 그래도 너희 아버지 자기 할 일은 다 하고 놀았다.”
김태연의 부친은 그녀가 20살이 되던 해, 유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는 직전까지 일 때문에 서울을 왔다갔다하는 둘째 딸의 매니저 아닌 매니저 역할을 해냈다.
“매일 출퇴근을 시켜주셨어요. 아프신 다음에는 나오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버스 타고 터미널에 내려보면 아버지가 머뭇머뭇 웃으시며 손을 흔드시고 계시는 거예요. 돌아가시기까지 아버지의 팔을 베개 삼아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버지가 아프시다며 팔을 치우시면, 억지로 팔을 다시 내 머릿밑에 놓았죠. 참 철없는 딸이죠?”
부모는 언제나 사랑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자긍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한다. 자신이 지켜온 일과 가치를 소중히 한다.
▲ 부모들은 사랑의 주술을 담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10년지기라도 노력한 사람 앞에
조심할 줄 아는 배려, 이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배운 김태연의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원문 출처>
무비스트 www.movist.com/movist3d/view.asp?type=2&id=atc000000003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