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은 패션모델이다. 인체의 굴곡을 더듬어 흘러내리는 옷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찰나에 그 특징을 잡아 표현하는 퍼포밍 아티스트가 그녀의 직업이다. 또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모델연기전공, 서경대 예술교육원 모델학전공 주임 교수로서 넓은 여백을 남겨두고, 학생마다 있는 고유의 칼라(Color)를 찾아주는 교육자이다.
본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패션 유토피아를 모색하는 탐구자 ‘김태연’을 3편에 걸쳐 소개해본다.
① 코로나 못잖은 IMF 시절, 10대모델 ‘빅5’로 각광
② “모델, 천 번을 담금질해야 피어나는 강철의 꽃”
③ 패션 유토피아를 꿈꾸다…미뉴에트 이매진 (Minuet Imagine)
■ 국민일보 “톱디자이너들은 그녀를 선택했다”
▲ 여고2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SBS슈퍼엘리트모델선발대회에 출전해
2등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태연. 그녀는 틴에이저 모델 빅5로 언급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사진은 앙드레 김 패션쇼의 장면으로 오른쪽이 김태연.
“지금도 무대에 서면 데뷔 때와 똑같은 설렘을 느껴요.”
패션과의 지독한 사랑에 빠진 슈퍼모델, 김태연은 1997년 대전여고 2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해에 출전한 SBS슈퍼엘리트모델선발대회에서 2위를 수상하며 데뷔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대회는 국내 최고의 패션모델 등용문으로 명성 높다. 슈퍼모델이란 타이틀도 오직 이 대회의 입상자에 한해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더군다나 김태연이 입상한 해는 슈퍼모델의 최전성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는 건국 이래 최대 경제적 위기로 언급되던 IMF(구제금융요청) 때로 한보철강, 한보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한신공영그룹, 기아그룹, 해태그룹, 뉴코아, 고려증권, 한라그룹, 나산그룹, 극동건설, 거평그룹, 대우자동차, 동아건설 등 대재벌들이 무너지든 시기였다. 말그대로 국가부도 위기였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10대 모델들은 패션디자이너와 기업들이 선택한 구세주였다. 국민일보 등 당시 언론들은 김태연을 비롯해 장윤주, 양석주, 옥지영, 정유미를 가리켜 10대모델 ‘빅5’로 언급하며 ‘앙팡테리블’이라고 지칭했다.
국민일보 김혜림 기자는 1998년 “97슈퍼엘리트모델대회에서 2위에 입상, 모델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태연(18)은 지난해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컬렉션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델이었다. 진태옥 설윤형 한혜자 루비나 오은환 정미경 등 톱디자이너들이 그녀를 선택했다”고 서술했다.
한국일보 이성희 기자는 “10대 모델(빅5)들이 패션광고를 석권했다”고 표현했을 정도. 그녀들을 쫓아다니는 극성팬들 중에는 모델을 꿈꾸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지망생들도 상당수였다. 이 세대가 ‘2001 환상의 세대’라고 불리는 한지혜, 한예슬, 소이현, 김빈우, 공현주, 최여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김태연이지만 사실 그녀의 꿈은 처음부터 모델이 아니었다.
■ “태연아, 현모양처는 직업이 아니란다”…조금은 엉뚱했던 소녀
▲ 여고 시절의 김태연은 장래직업에 현모양처라고 기재해 상담실에 불려갔을 정도로 엉뚱한 구석이 많았다.
김태연은 이제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창의력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법을 지켜가고 있다.
2녀 1남 중 둘째인 그녀는 슈퍼모델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해진 인생의 목표는 없었다. 진로에 대해 별다른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여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무척 수줍음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어머니조차도 (제가) 모델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키만 멀대 같은 촌뜨기에 지나지 않았다.
“저의 세계는 집, 학교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써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족에게 물어봤죠. 어머니께서 ‘선생님’이라고 해서 그렇게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나요.”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때도 같은 질문, 같은 고민과 마주하게 된다. 이때의 일화가 요즘 말로 병맛스럽다. 그녀가 제출한 진로계획서에 장래희망이 ‘현모양처’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진로상담실로 불려간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선생님 말씀이 ‘현모양처’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선생님’ 할게요 라고 대답했죠.”
17세 소녀의 이 같은 상큼하고 해맑은 미소를 접했던 담당 교사의 마음이 20여년의 시공을 뚫고 취재기자에게도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고차원의 우주를 담은 영적생명체’라고 생각했을 지도.
■ “자네 모델해 볼 생각 없나”…조세현 작가와의 인연
▲ 김태연은 소위 잘 나서지를 않는 성품이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하는 일에
있어선 조용하나 결코 꺼지지 않는 롤스로이스 엔진처럼 나아간다.
그러나 필자가 지켜본 바는 조금 달랐다. 이런 김태연의 성격은 나설 때와 조용히 있을 때를 선천적으로 잘 아는 데서 비롯된다. 멍하다가도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일을 찾았을 때는 결벽스러울 만큼 꼼꼼한, 마치 사찰처럼 정리된 명쾌 단순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실제 SBS슈퍼모델대회 출전을 결심한 순간이 그랬다.
“언니가 모델(모델라인 소속)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한번은 기연 언니가 잡지 촬영하는 곳을 따라갔어요. 그때 조세현 사진작가님이 너 모델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때는 아뇨, 저 무서워요라고 대답했지만.”
조세현 작가는 이영애 등 셀럽들이 선호하는 국내 최고의 사진작가중 한명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세현 작가에 이어 친하게 지내던 학교 후배마저 종용하자, 드디어 결심을 굳히게 된다.
몇몇 신문사에서는 김태연과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대회 예선을 치루는 동안 일체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예선전에는 부모님도 모르게 참가했는데 예선입상 후 이 사실을 안 어머니께서 꾸중대신 격려해줘 너무 고마웠어요’라고 소개했다.
이 보도와는 달리 김태연의 슈퍼모델 도전기는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원문 출처>
무비스트 www.movist.com/star3d/view.asp?type=32&id=atc000000002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