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울에서 눈에 띄게 아름다운 곳은 한양도성이다. 특히 은은한 조명이 켜진 야경은 일품이다. 한양도성은 태조 5년인 1396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600년 이상 수리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왔다. 남산,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그리고 낙산의 네 가지 산기슭을 이어 지었기에 구불구불하며 완만한 곡선을 띠고, 커다란 높낮이로 오르락내리락한다. 게다가 성벽이 조성된 시기에 따라 모양과 색조가 다른 돌들로 구성되어 미묘한 무늬를 이루고 밤의 성벽에 불빛이 비춰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태를 나타낸다.
그런 야경을 만끽하며 가벼운 운동을 겸해 오늘 밤에도 혼자 성곽을 따라 걸었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이 코스는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낙산이 그리 높지 않아서 겨울에도 다니기에 무난하다. 성벽 안팎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여서 낙산에 다다르면 더욱 눈이 즐겁다.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 위를 지나가는 성벽의 빛도 보여, 머릿속에 옛 한양의 지도를 그려 본다.
오늘은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아 일 년을 돌이켜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둡고 아픈 사건도 많았지만 한양도성에 얽힌 즐거웠던 시간, 기억들이 생각났다. 지난 학기에 담당한 과목 ‘관광일어’ 시간의 야외 실습도 즐거웠던 작업이었다. 서울의 역사가 담긴 문화관광콘텐츠를 찾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곳을 한국과 중국 학생들이 연구하고 직접 현장에 가 본 수업이었다. 북한산 밑에 위치하는 우리 학교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성북구와 종로구를 중심으로 윤동주 문학관, 최순우 옛집,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청계천의 광통교, 공간건축 옛 사옥, 원서동, 북촌 등을 선정했고 한양도성 길을 걸어 보고 사소문 중엔 창의문과 혜화문을 걸어가며 직접 살피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도 했지만, 각자 예습을 해오고 현장에서는 문화유산해설사 선생님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다. 특히 ‘최순우 옛집’, 옛 서울시장 공관을 살린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서는 역사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콘텐츠로 되살리려 하는 시도에 크게 관심을 나타냈다. 성북동의 일부 성벽이 끊어진 구간을 실제로 다녀 보고 각자 생각하며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과제로 삼기도 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기대가 크다. 우리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젊은 학생들에게 던져 본다. 답은 기존 세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원문 출처>
동아일보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227/989785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