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칼럼 : 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국 이야기, 세밀하고 풍부하고 보석 같은
조회 수 5603 추천 수 0 2018.11.19 10:08:204개 성 각각 한글자 한자로 풀어
참고문헌 500개, 시·공간 교차
전문적 관점, 영화 같은 재미 선사
한글자 중국: 중국의 탄생
김용한 지음
휴머니스트
한글자 중국: 중국의 확장
김용한 지음
휴머니스트
정암(定庵) 공자진(龔自珍: 1792~1841)은 중국 문학도에게는 스타 시인이다. ‘300년 만의 최고 시인’이란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시만 걸출했던 건 아니다. 인물 또한 비범했다. “시와 사람은 하나다. 사람 밖의 시 없고 시 밖의 사람 없다(詩與人爲一, 人外無詩, 詩外無人)”는 정암 자신의 말 그대로의 인생을 살았다.
연작시집 『기해잡시(己亥雜詩)』 제5수(首)를 보자.
“근심 호탕하게 등지니 해는 기울고(浩蕩離愁白日斜),
흥얼대며 말 몰아 동으로 가는데 문득 절벽이다(吟鞭東指即天涯).
떨어진 꽃이 어찌 무심한 물건일까(落紅不是無情物),
진흙이 되어 꽃 더욱 키우는데(化爲春泥更護花).”
평생 몸담은 관직을 떠난 자, 낙향자의 심정이 이처럼 절절할 수 있을까. 첫 두 절은 관직을 버리면서 느끼는 홀가분함, 그러나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후반 두 절이 백미(白眉)다. ‘떨어진 꽃이 어찌 무용지물일 수 있겠나. 땅에 떨어져 양분되어 새 꽃을 더욱 잘 키울 수 있는데’라는 의미다. 은퇴 후의 삶이 은퇴 전의 삶 못지않게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할 수 있음을 노래한 절창(絶唱)이다.
『한글자 중국』을 쓴 김용한도 정암처럼 스스로 은퇴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간다.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답게 그의 시선은 글자 한 자(一字)라는 미시적 포인트에 주목한다. 중국의 각 성(省)을 상징하는 한 글자에서 그는 무한대로 중국을 읽어 낸다.
이 책의 특징은 여러 겹의 교직(交織)이라는 점이다.
우선 시간과 공간의 교직이다. 저자는 글자 한 자에서 각 지역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공간의 광대함과 다양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설명은 놀랄 만큼 세밀하고, 동시에 포괄적이다.
중앙 집권과 지역 분산의 교직도 등장한다. 통합과 통일을 지향하는 중앙 정부의 구심력과 여기에 저항하는 지역 제후들의 원심력이 여러 동심원을 그리며 겹쳐진다.
마지막 교직은 탄생과 확산의 혼재다. 중원 문화의 묵직함과 넉넉함, 지역 문명의 다양한 색채가 변증법적으로 분출한다.
무리가 안 보이는 건 아니다. 한반도보다 넓은 성(省) 34개를 각각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내기가 힘겨워 보이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런 무리를 무리 없이 덮어준 것이 풍성한 전고(典故)와 사진이다.
각 성별로 적게는 열 개, 많게는 서른 개 가까운 참고 문헌이 등장한다. 상권에 해당하는 『중국의 탄생』과 하권 격인 『중국의 확장』 두 권에 등장하는 참고문헌은 500개가 넘는다. 이 서평을 쓰는 필자도 중문학도이고, 베이징 특파원과 홍콩 특파원을 지내면서 한국인이 쓴 중국 관련 책들을 적지 않게 섭렵했지만, 이토록 풍부한 전고를 담은 저서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풍부함이 주는 혜택은 다양성이다. 후난(湖南)성을 다룬 ‘상(湘)’자 편에는 삼국지의 유비, 태평천국의 백성, 신(新)중국의 창건자 마오쩌둥(毛澤東), 그리고 현대 기업인과 노동자가 물 흐르듯 등장한다. 자연 생동감이 넘친다.
또 다른 혜택은 포용이다. 세세한 전고는 전문적 팩트와 관점을, 풍부한 사례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대중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선사한다.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두루 포용할 수 있는 구조다.
완전함을 추구하면 오히려 비어 보이기 쉽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까? 저자는 중국 전역을 훑으면서도 유독 티베트(西藏)만은 빼놨다. 본인이 직접 가보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설명치곤 좀 궁색하다. 티베트 입경에는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있긴 하지만 불가능한 노릇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뭘까? 중국어판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티베트를 얘기하려면 슬픈 병탄의 역사, 그리고 참혹한 진압과 학살의 상흔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절대 금기시되는 대목이다.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미뤄 놓았을 수도 있겠다. 티베트의 역사는 복잡하다. 한인(漢人) 이주 정책과 영토 할양 탓에 섞이고 찢겼기 때문이다.
책 두 권 안에 담긴 34개 성 하나하나가 빛나는 보석처럼 다가온다. 히스토리(History)와 스토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보석을 캐내는 것은 이제 독자 몫이다.
< 원문 출처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132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