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인성교양학부 교수
(사)한국빅데이터협회 부회장
‘체면’은 우리 민족의 심리특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現狀) 내지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즉, 체면은 한국인의 여러 가지 심리특성인 눈치, 정(情), 한(恨), 핑계 등과 함께 다른 민족에 비하여 유독 돋보이는 정서적 변인이다.
우리말에 체면과 관련된 표현이 많다. 체면이 서다, 체면을 차리다, 체면이 깎이다, 체면이 손상되다, 체면을 지킨다, 체면을 유지하다, 이거 참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체면 꾸겼다, 체면 차리지 말고 맘껏 드세요, 선배 체면이 말이 아니네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리특성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체면은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차려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려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체면을 차리거나 지키는 게 부자연스러운 경우도 더러 있다. 상대와 아주 친밀한 관계일 경우이다. 친구들과의 모임, 연인 사이, 부모자식 간 등이 그것이다. 반면에 선생님과 학부모, 성직자와 신자, 은사(恩師)를 대할 때 체면을 지켜주어야 한다. 일상에서 지나칠 정도로 체면치레를 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어느 사회학자는 체면의 이중구조를 설명하였다. ‘속(裏)’은 본 마음, 사실 또는 사적자기(私的自己)가 될 수 있으며, ‘겉(表)’은 밖으로 표현된 마음, 외적명분 또는 공적자기(公的自己)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체면이 지나치면 표리부동과 같은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체면은 상황과 관계에 따라 자기와 또는 사실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이나 지위나 외적명분을 높여주는 행동으로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과장하여 높이는 체면과는 달리 자신을 나추면서 겸손을 미덕으로 하는 예(禮)를 맹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양지심을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 즉 남의 욕망에 대한 공감을 예라고 보았다.
이를테면 손님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경우에 자신이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지만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곧 사양지심이다. 그리고 접대 받는 입장에서 되도록이면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서 질은 떨어지지만 저렴한 음식을 주문하여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자의 심성 또한 사양지심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상대에 대한 예를 표현함에 있어서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든지, 나이가 많다든지, 인격이 높을 때는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비합리적으로 결정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대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싼 음식을 시키면 상대방에게 행여나 소홀히 대접한다는 느낌을 주어 서운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이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상대가 자신보다 아래 사람이라면 메뉴를 선택할 때, 여유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접을 받을 때나 대접할 때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경우, 상대방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인생의 풍부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예를 근간으로 한 인간관계의 내공이 축적되어 있기에 가능하리라.
체면은 우리 문화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심리특성이라면 사양지심은 동양의 인간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편적인 에티켓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체면과 사양지심은 둘 다 인간관계를 설명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를 인간관계망과 관련지어 차이점을 분석해보면, 체면은 적당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는 심리특성이지만 지나치면 체면치레가 되어 오히려 표리부동한 자로 취급받아 분명 인간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반면에 사양지심은 정적(靜的)이고 내면적인 관계에 더 치중하는 예를 근간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장되지 않는 적당한 체면과 예를 근간으로 하는 사양지심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조건임은 분명한 것 같다.
<원문 출처>
민주신문 http://www.iminju.net/news/articleView.html?idxno=3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