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미래기획단-형사법 아카데미, 수사권조정 세미나
정웅석 교수 “검찰 개혁 아닌 법체계 선택의 문제다”
김성룡 교수 “수사 기본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논의”
이경렬 교수 “유사 논의 있던 독일 볼 때 방향 잘못”
이정민 교수 “일본 따르려면 문화와 국민성 같아야”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지난 6월 21일, 이낙연 국무총리,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약칭 정부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조정안을 통해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고 검경이 법치국가적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고... 검경이 지휘와 감독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국민의 안전과 인권의 수호를 위해 협력하면서 각자의 책임을 높이는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지와 의도를 표출했다.
정부합의문 내용의 핵심은 ‘일반수사는 경찰, 일반수사에 대한 기소 및 공소유지는 검찰, 특수수사 및 권력형 비리는 특별기구(고위공직자수사처)에 맡기는 수사 3륜 체제’다. 이를 통해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최근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수사권 분점론’ 논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 수사, 소추, 재판 절차를 마치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분립처럼 서로 분리시키고, 이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하여 수사는 경찰, 소추는 검찰, 재판은 법원이 담당하도록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는 공소관으로서의 직무에만 전념토록 하여 검찰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8월 24일, 검찰미래기획단-형사법 아카데미가 ‘검사의 역할과 수사권 조정’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대검찰청 NDFC 2층 베리타스홀에서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는 문찬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검찰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서경대학교 정웅석 교수가 ‘검사의 역할과 수사권 조정-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문의 문제점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고, 경북대학교 김성룡 교수가 제1주제 ‘유럽 국가들에서 검찰, 검사의 지위와 역할’ 발표를, 성균관대학교 이경렬 교수가 제2주제 ‘독일의 수사권조정 논의 및 시사점’ 발표를, 단국대학교 이정민 교수가 제3주제 ‘일본의 수사제도 운영과 그 전제’를 발표했다.
“대륙법계·영미법계 짜깁기한 정부합의문,
공안 권력 비대한 중국 모델에 가장 근접해져”
정웅석 교수는 먼저 수사체계 재편의 논의는 “(이를) 대륙법계로 할 것인지 영미법계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봤다. 보통 형사소송절차에서 검사나 피고인에 대하여 법원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직권주의)를 취하는 체계를 ‘대륙법계’, 소송당사자에게 주도적 지위를 인정하면서 법원은 제3자적 입장에서 양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을 판단하는 구조(당사자주의)를 취하는 체계를 ‘영미법계’라고 한다.
대륙법계, 영미법계 중 어떤 체계를 취하는가에 따라 형사사법체계 각 단계에 있어 관여자 및 그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 정웅석 교수의 설명이다.
먼저 대륙법계는 유죄판결을 받기에 충분한 혐의까지 ‘공판 전(前) 단계’에서 조사되는 구조로, 공판 전 수사절차는 검사에게 맡기는 동시에 그 단계에서는 판사가 유죄판결을 할 때의 확신에 가까운 정도로 고도의 혐의가 입증될 때까지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반면 영미법계에서는 경찰의 입건단계 수준에서부터 바로 치안판사 등 법원의 절차로 넘어가도록 구성되어 있고 이에 따라 법원의 절차가 매우 일찍 시작된다. 공판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혐의의 정도도 대륙법계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웅석 교수는 “결국 ‘공판 전 단계’ 중 특히 ‘공소제기단계’가 치안판사 법원이나 기소배심(대배심) 절차와 같이 법원의 절차로서 당사자주의적으로 진행되는지, 아니면 검사나 수사판사에 의한 직권적 조사절차로 진행되는지가 영미법계와 대륙법계 간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공판 전 단계’ 중 ‘공소제기단계’가 수사의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는 영미법계와 달리 대륙법계에서는 이 단계까지 수사의 범위에 넣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 사법적 성격을 갖는다’는 명제가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정리를 바탕으로 정웅석 교수는 이번 정부안을 분석, 경찰에게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는 방안은 영미식 수사구조를 따른 것이고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하지 않은 채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도록 규정한 부분도 대륙법계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합의문은 영미법계 수사구조와 대륙법계 수사구조가 짜깁기된, 그것도 현재 각 체계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받고 있는 부분을 억지로 끼워 맞춘 ‘잘못된 안’이라는 평가다. 나아가 “사실상 공안기관(경찰)이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의 형사사법모델과 가장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국 형사사법체계에서 검찰의 수사범위는 특정범죄(공무원 직무범죄)에 한하면서 수사지휘권은 부정되나 보충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인정하면서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불복도 인정한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합의문 또한 검찰 수사범위를 특정범죄(5대 특별수사)로 한정하고, 수사지휘권을 부정하되 보완수사 요구를 할 수 있으며 경찰에 수사종결권 및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불복을 인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중국과 매우 흡사하다.
정웅석 교수는 “정부합의문과 같이 ‘검사’와 ‘경찰’을 상호대등한 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수사권이 행정기관으로서의 ‘경찰’ 전체에 부여되는 것이며 사법경찰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경찰청 소속 경찰관이면 누구든 수사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우려했다. 고도의 직무 독립성과 신분을 보장받고 있는 검사와 달리, 직무 독립성 없이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에게 사법기능까지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정 교수는 “검사 본연의 역할이 국가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인 것을 상기해야 하며, 이는 사법경찰을 검사가 수사지휘 하도록 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이 아니라 검찰인사에 대한 청와대 등 권력집권층의 간섭을 배제하는 방안을 입법화하는 것에 달려있다”라고 강조했다.
“사법 경찰은 검찰의 늘어난 팔”
김성룡 교수는 유럽 국가들에서 검사의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시사점을 도출해 냈다. 먼저 유럽평의회 각료 위원회에서 2002년에 설치, 현재 47개국 대표로 파견된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법의 효율성 유럽위원회’가 격년으로 발간하고 있는 연구보고서를 검토했다. 이 보고서는 ‘유럽사법제도의 효율성과 사법의 질’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바, 김 교수는 이 보고서 중 최근 발간된 2016년판에서 주요내용을 정리했다.
이 보고서는 먼저 ‘검사’의 정의를 ‘사회를 대표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형사 사법 제도의 필수적 효과 모두를 고려하여 법 위반이 형사제재를 가져오는 곳에서 법률의 적용을 보장하는 공공당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검찰과 검사의 ‘지위’에 관하여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헌법이나 법률에서 검찰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고, 법무부장관이나 다른 중앙행정부서에 조직적으로 배속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검사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금지하는 법규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의 기능적 독립이 법의 지배 원칙이 실현되는 검찰 모습의 핵심 의미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를 두고 김 교수는 “검찰의 독립성은 유럽의 검찰에게 보장된 법치국가의 핵심 표지”라고 정리했다.
이어 검찰의 ‘역할과 권한’에 대하여는 사실상 영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의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휘 또는 감독하고, 39개의 국가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검찰의 수사지휘가 결국 수사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검사에게 돌리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그는 현행 형사소송법 제196조 및 경찰법, 경찰공무원법상 규정을 근거로 경찰 측에서 ‘경찰청장이나 지방경찰청장들이 사법경찰관의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고유한 지휘, 감독권의 행사”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반박 의견을 개진했다.
“경찰의 수사활동을 행정경찰의 작용으로 이해하고 상급경찰관은 하급경찰관이 어떤 직무를 수행하든지 간에 상관으로서 당연히 하급경찰관을 지휘, 감독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현행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전인수 격의 곡해”라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독일 법원조직법 제152조에 관한 해석론을 소개했다.
1879년에 시행된 독일법원조직법 제152조는 검사에게 당시 (보조공무원으로 불리던) 경찰공무원을 사법경찰관으로 임명하게 함으로써 당시 법원 (소속) 경찰에 대응하는 하나의 하부구조를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형사소추활동과 무관한 명령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수사활동은 행정작용이 아니라 사법작용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케 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검사의 명령에 근거하여 활동하는 ‘수사 요원’(보조공무원에서 이름이 바뀌었다)은 검사의 ‘기관’ 혹은 ‘늘어난 팔’로서 표현되었는데, 독일에서는 이를 법 이론적으로 ‘기관대여, 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특별한 공무협조규정을 통해 경찰이라는 기관을 대여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사법경찰관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검사가 지도록 하는 것도 이 같은 성격에서 기인하는 법적 효과다.
김성룡 교수는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정부가 발표한 수사권 조정 합의문은 이러한 검찰의 성격 및 수사체계의 기본원리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논의”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진정으로 검찰의 개혁을 원한다면 ▲검찰을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 ▲부패와 부정에 버틸 수 있는 보수를 지급하고 실질적 정년을 보장할 것 ▲검사 스스로 행정기관의 공무원이 아니라 사법의 일부를 담당하는 자라는 자기 인식을 분명히 할 것 ▲경찰과 사법경찰관은 각각 법에서 정하고 있는 고유의 의무에 충실할 것 ▲일부 검사가 검찰 전체의 위상과 명예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감찰기능과 징계제도를 엄정하고 분명하게 실시할 것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이경렬 교수, 정웅석 교수, 김성룡 교수, 이정민 교수
40년 전 독일의 수사권 조정 논의를 보니...
이경렬 교수에 따르면 우리 법체계의 근간을 제공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약 40여 년 전 우리와 같은 수사권 조정 논의가 있었다. 1879년에 시행된 제국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구조에 관한 규정은 큰 변화 없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나, 그동안 독일에서는 수사권 논의가 산발적으로 있어 왔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는 고조에 달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완화 또는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 강화에 대한 요청은 당시 독일의 수사실무에서 발생한 규범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보통이라고 이경렬 교수는 말했다.
법 규정이 검찰을 수사절차의 주재자로 정하면서 경찰 수사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체계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에서는 경찰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수사영역이 확대되고 검찰은 이를 소극적으로 ‘수락’하는 정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특히 1971년 뮌헨에서 발생한 은행인질강도사건은 검경 지휘권 논쟁에 불씨를 제공했다. 독일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현장을 지휘하던 부장검사의 진압작전 개시 명령이 너무 성급했다는 거센 비판에 휘말렸다. 더불어 범죄 수사에 있어 검찰과 경찰의 수사지휘권의 내용과 범위에 대한 재론이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입법 권고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1975년 각 주의 내무부장관회의를 거쳐 구성된 주 검찰과 경찰의 관계규정을 위한 공동위원회 입법권고안, 1978년 연방법무부의 ‘검찰과 경찰의 관계에 대한 법률 예비초안’, 2001년 형사법학자 20여 명의 ‘수사절차 개정을 위한 대안’ 등이다.
이경렬 교수는 이러한 안들을 분석, 가장 주목할 만한 공통점으로 ‘검찰과 경찰의 관계 설정에 있어 수사의 주재자로서의 검찰의 지위를 박탈하거나 약화하려는 시도는 어느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오히려 법현실과 법규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수사실무에서 합규범성을 확보하는 한편 당시 행해지던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에 대해 보다 세밀한 통제 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독일에서의 수사권 논쟁은 수사권이라는 국가권력 자체의 문제로서 수사권의 보다 세밀한 통제 논의로 귀결되었을 뿐, 권력 배분의 문제(즉, 누가 수사권을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의 수사권 논의도 법치국가적 이념에 충실한 제도 정립을 위한 수사제도 자체의 개혁에 중점을 두어야지 과거 잘못한 누군가를 벌하기 위한 회귀적 관점에서만 천착한다면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 된다”면서 “수사권 논의는 검찰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제도 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와 유사점 많은 일본,
그대로 따라도 될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이정민 교수에 따르면 일본 구 형사소송법으로부터 전후 형사소송법으로의 변화는, 소송구조가 직권주의에서 당사자주의로 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종전 대륙법계의 영향을 받은 일본 사법제도가 영미법계의 영향으로 인해 독자적인 제도로 변하게 된 것이다. 묵비권이나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 보장,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영장주의 채용, 기소장 일본주의에 의한 수사와 공판의 분리 등이 당자주의의 절차적 기반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이다.
이로부터 수사를 경찰에 맡기고 검사는 공판만 하는 미국 검찰제도의 도입, 즉 공판전담론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는데, 당시 검찰은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현재 검사에게는 수사개시 및 수사지휘권이 있고 검사는 수사도, 기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민 교수는 일본이 현재의 형사사법 체계를 취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간략히 짚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세기 일본 형사소송법에서는 검사의 관련자 조사와 조서 작성에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검사는 경찰의 수사내용을 건네받아 기소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에 비해 기소율, 예심면소율, 무죄율이 모두 높았는데 이는 곧 죄가 없음에도 기소되거나 죄를 지었음에도 증거 부족의 이유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성으로 일본에서는 검사가 피의자와 참고인을 직접 조사하는 등 치밀한 수사와 엄격한 법적 판단에 기초하여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실무 경향이 나타나는바, 이를 ‘정밀사법’이라고 한다.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 정밀한 수사를 기본으로 신중하게 기소하고 정밀한 사실인정을 하는 것을 뜻하는 ‘정밀사법’은, 일본의 형사사법시스템을 대변하는 말로 통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재판원 재판이 도입되면서 재판소에 제출할 증거는 최소한으로 하자는 움직임, 즉 ‘핵심사법’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재판원 재판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기 때문에 쉬운 절차로 간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재판원에게 범행의 동기나 경과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은 곤란하고 판결은 공소사실을 인정할지 말지, 어떤 형이 적당한지 간명한 이유를 나타내야 한다. 이처럼 형사재판의 내용에 변화가 생기면서 형사재판 정당성의 근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종래 실체적 진실 발견만이 형사재판의 정당성을 담보하였다면, 재판원 재판에서는 일반 국민의 참여로 인해 국민의 눈에 납득 가능한 절차, 즉 절차적 정의의 실천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일본이 겪은 형사사법 체계의 물리적, 정신적 변화는 우리와 큰 시차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러한 일본과 같은 방향을 취하면서도 같은 효과를 나타내려면 우리와 일본이 같은 문화적 배경과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정민 교수는 우리가 일본과 다른 대표적인 점으로 “일본은 외부에서 도래한 문화에 대해 포섭적인 태도를 취할 뿐 기존 문화를 전면 개혁하지는 않는다는 점, 일본인은 ‘각자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사고 방식으로 인해 특권층을 독재자로 취급하기보다 중대한 책무를 위탁받은 인간으로 본다는 점, 상호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국민성으로 인해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력관계를 어렵지 않게 구축할 수 있다는 점,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 ‘기리(義理)’를 중시하는 점” 등을 들었다.
유사한 제도 운영을 통해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양국 간 문화적 배경과 국민성의 차이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 원문 출처 >
법률저널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