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산이 활짝 웃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그리고 산수유. 북한산 아래 정릉천을 따라 이어지는 정릉마을에 봄이 왔다.
나는 8년 전 직장을 따라 정릉으로 이사 와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청수장에 4년, 동방주택에 3년을 산 후 한 번 더 이사했다. 그동안 직장을 오가며, 시장을 오가며, 성당을 오가며 동네를 걸었다. 정릉에는 비탈길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다. 오래된 집들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유난히 커다란 집, 눈길이 가는 특이한 집들도 있어 호기심이 생기곤 했다. 그곳에는 누가 살았을까? 그곳에 살면서 무엇을 했을까?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전시가 성북동에 위치한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시작됐다. ‘정릉시대전’이 그것이다. 나는 꽃샘바람이 부는 지난 금요일에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남편에게서 정릉에는 예술가가 많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전시를 보고 리플릿에 있는 지도와 작가가 살던 곳을 대조해 보고서야 그 사실이 확실히 와 닿았다.
놀랐던 것은 내가 늘 걸어 다니던 길가에 있던 아담한 집이 화가 정영렬(1934∼1988)이 살았던 집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한지의 소박하고도 단아한 질감이 살아 있다. 그의 집은 정릉시장에서 동방주택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위치한 구멍가게와 세탁소 근처에 있다. 이젠 세탁소는 문을 닫고 가게만 남아 있고, 집 옆엔 주차장이 덩그러니 만들어져 있다.
다시 전시를 보고 돌아오며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곳까지 걸었다. 꽃샘추위로 비는 눈으로 바뀌었고 이중섭(1916∼1956)이 살던 곳에 가까워지자 함박눈으로 변해버렸다. 그가 정릉에 살았던 시기는 1955년 12월부터 생을 마감하던 1956년 9월 6일 직전까지라고 한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북한산에 가까운 정릉 중에서도 북쪽이라고 한다.
그가 살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우연히도 그곳은 내가 살았던 집과도 아주 가까웠다. 그가 생을 마감한 1956년 봄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감성이 풍부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화폭에 담았던 이중섭. 오늘은 꽃으로 가득한 산동네에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릉에서 그린 작품 ‘돌아오지 않은 강’ 속에도 오늘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이중섭은 화가 박고석(1917∼2002) 집에서 하숙했고, 화가 한묵(1914∼2016)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두 작가의 작품도 소개되어 있다. 박고석은 정릉의 자연을 그렸고, 한묵은 추상화를 그렸다. 아픔 속에서도 봄엔 꽃이 피었을 것이고, 이들이 함께 지내며 예술을 나눴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됐을 것이다.
그곳에서 정릉천을 따라 내려가다 경국사에 못 미친 곳, 개울가 안쪽에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1926∼2008)가 딸과 지내며 많은 작품을 남긴 집이 있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의 석방 소식을 들은 곳도 이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안학교가 돼 있다. 재개발 계획으로 변해가는 마을에도 여전히 울긋불긋 봄꽃이 피었고 천변엔 벚꽃이 흐드러져 있다.
맑고 청정한 자연과 산에서 내려온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정릉을 전시를 보고 다시 걸어보니 근현대 예술가들이 생활한 흔적을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곳에서 그들의 삶이 여유롭진 않았지만 예술을 사랑하며 감성을 지키기 위해 서로 의지하고 힘이 돼가며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닐까?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오늘부터 ‘거리갤러리’를 개관해 설치미술가 최정화(1961∼)의 ‘숲’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내가 갔을 때에는 작품이 한창 설치 중이었는데 인공적인 초록의 숲이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정화는 국제적으로 활동해 일본에도 꽤 알려진 작가다. 성북동에 살았던 적이 있는 그가 성북초등학교의 어린이들, 성북2동 경로당의 어르신 등 주민들과 함께 작업한 ‘주민참여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 작품을 이뤄낸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정릉시대전’을 통해 정릉의 문화예술 역사의 향취를 느끼고 야외 전시 ‘숲’을 통해 현대의 성북을 감상하며, 또한 정릉천을 따라 활짝 웃는 산, 정릉마을의 봄을 걸어보면 어떨까.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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