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서경대 철학과 교수 /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
여론조사의 계절이 또 왔다. 응답률이 낮은 상태에서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열심히 일한다. 오차 범위를 제시하고 그 뜻을 지역별, 세대별, 직업별로 분석한다. 그런데 여론조사 뉴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시점에서의 결과를 주로 전하며, 후보자들의 지난 1년가량의 지지율 추이를 이따끔 곁들여 전하는 식으로 뉴스가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현재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지만 과거 중요한 시기의 결과를 떠올려 보면 일정한 추이를 발견할 수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들은 40대 초반을 전후로 정치적 견해가 달라진다고 보여준다. 이 분수령은 10년이 지난 2012년 선거에서는 50대 초반으로 넘어왔으며, 요새는 전문가들이 50대 초반과 후반을 분리해 분석해야 할 필요를 느낄 정도에 이르렀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다. 이는 그런데 우리가 시간 속에서, 또한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그저 살아간다는 밋밋한 의미만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것은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살아오며 실제로 체험한 시대와 그때의 여러 공유되는 앎에 주로 기인한다는 점을 인간의 역사성은 담아낸다. 추운 밤, 군대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먹는 라면은 이러한 시간을 보냈던 이들에게 복무 지역, 시기에 관계없이 사실상 하나의 느낌과 앎을 부여한다. 마찬가지로 1976년 고교 평준화 이후의 교실 모습도 이와 유사했다. ‘평준화된’ 교실을 함께하고 졸업한 이들에서는 참깨 장수도 탄생하고 판사도 나오고 중고차 대리점에서 일하는 회사원도 있다. 이들은 친구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시간과 체험이 전하는 앎의 공유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성이 여론조사에는 녹아들어 있다. 그런데 현재 시점의 여론조사와 독법에 이는 초점화되지도 거론되지도 않곤 한다. 사회 변화가 선진국에 비해 빠르고 또한 우리 사회가 유행과 조류에 민감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세대 간의 상이한 역사 현장 체험과 인식을 담아내는 작업이 여론조사 분석에서 긴요할 것이다. 이런데도 현재 의견을 언론은 보여주려 한다. 마치 우리가 유력 정치인의 언행이나 실수 하나하나에 스마트폰 시대에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비로소 정치적 인간이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은 우리를 역사적 존재로 여기지 않으면서 여론을 보여주려 하는 근원적 오류를 감수하면까지 공론을 전한다고 나서는 그야말로 스스로가 설정한 사명감에 젖어있다.
이렇듯 여론조사는 초점화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공동체 개인의 역사성은 주로 20세 전후에 그 윤곽을 잡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고등교육은 사회의 방향성 정립 및 시민의 역사성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교육 하면 사람들은 대개 입시, 서울대 문제 등을 떠올리지만 교육은 실은 성적표보다는 교육현장에서 살아간 체험 및 그곳에서의 앎을 각 개인에게 길게 그리고 깊게 남긴다. 우리 각자가 그곳에 실존하였던 것이다. 이는 역사성의 이름으로 축적된다.
이러하기에 교육은 현재를 전하는 여론조사의 토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실제로 장기적이고 기초적인 부문이다. 지금 시대의 교육은 좋은 직업을 쟁취하기 위한 제도화된 인증 경기장으로 전락해 있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한다. 여론조사의 몰역사성, 교육의 직업교육화를 놓고 변화를 이 시대가 착수해야 한다.
<원문 출처>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69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