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정안과 상속세법 개편
최근 급속한 고령화와 공적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노후소득 보장’과 ‘세대 간 재정 형평성’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의지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 국민 개개인의 노후설계 방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75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온 상속세법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최근 정부와 국회가 상속세 체계 개편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산 이전과 조세 형평성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번 호에서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상속세법 개편 논의, 이 두 제도 변화의 흐름을 중심으로, 각각이 지닌 정책적 의미와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본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살펴보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먼저 국민연금 제도의 기본 구조와 핵심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대표적인 공적연금(Public Pension)으로서 국민연금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왜 지금 개혁이 필요한지 그 배경부터 짚어보자.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 중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이 가입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공적연금 제도다. "국민 모두의 연금"이라는 말처럼, 이는 단지 몇몇 계층의 노후보장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핵심 사회안전망이다. 국민연금은 다음과 같은 4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강제 가입의 원칙이다. 소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노후를 모든 국민이 함께 준비하는, 연대 기반의 제도임을 보여준다.
둘째, 소득 재분배 기능이다. 국민연금은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소득을 이전하는 ‘세대 내 소득재분배’와 미래세대가 현재 노인세대를 지원하는 ‘세대 간 소득재분배’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를 통해 소득격차를 완화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셋째,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지급을 책임지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은 반드시 지급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공적연금의 지급을 중단한 사례는 없다.
넷째, 물가상승을 반영해 연금의 실질가치를 보장한다. 국민연금은 연금액 산정 시 과거 소득을 현재가치로 재평가하고, 수급 이후에는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해 실질적인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강제 가입, 소득 재분배, 국가 지급 보장, 연금 실질가치 유지라는 4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국민의 노후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해 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과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적 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왔다. 이에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이 법안은 2025년 3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은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이뤄진 전면적 개혁이라는 점에서 제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핵심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조정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조정에 있다. 먼저, 가입자가 매달 부담하는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5년 넘게 9% 수준에서 유지되어 왔지만, 2026년부터 매년 0.5%p씩 단계적으로 인상되어 2033년에는 13%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개정을 통해 2026년부터 43%로 상향 고정된다. 소득대체율이란 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의미하는 지표로, 쉽게 말해 ‘은퇴 후 연금이 현역 시절 소득의 몇 퍼센트를 보충해주는가’를 의미한다. 소득대체율이 40%라면 은퇴 전 300만 원의 소득자가 매달 120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도입 당시 70%, 1999년 60%, 2008년 50%로 낮아졌으며, 법률 부칙에 따라 매년 0.5%p씩 인하돼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내년부터 43%로 상향 고정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자, ‘부담과 혜택의 균형’을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이는 단순한 부담 증가가 아니라, ‘더 내는 만큼 더 받는다’는 원칙 아래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정책적 방향성을 담고 있다.
2. 그 밖의 제도 보완 사항
이번 개정안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제도 참여 유인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보완 조치도 함께 포함되었다. 우선, 연금 수급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연금급여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에 명문화했다. 이는 제도에 대한 불신을 줄이고, 국가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수익률 목표를 기존 4.5%에서 5.5%로 1%p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번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조정과 함께 정부의 수익률 제고 노력이 병행된다면, 기금 소진 시점은 기존 2056년에서 2071년까지 약 15년 연장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출산 및 군 복무 크레딧도 확대된다. 앞으로는 첫째 자녀부터 출산 크레딧이 적용되고, 인정 기간 상한도 폐지되며, 군 복무 크레딧도 기존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확대된다. 이와 함께 보험료 인상에 따른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료 지원 대상도 확대된다. 이를 통해 연금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제도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적 협의와 조율 필요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단순히 ‘보험료를 더 낸다’는 부담을 넘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국민의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더 내는 만큼 더 받는 구조, 그리고 국가의 지급 책임 명문화, 수익률 제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보완책까지 포함된 이번 개정은 우리 모두의 노후와 직결된 중요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번 개정안에 대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형평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적지 않다. 연금을 납부하는 현재의 세대와 이를 수령할 미래 세대 간의 균형, 제도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국가의 책임에 대한 신중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세대도 지나치게 부담을 지지 않도록,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의와 조율을 통해 제도를 함께 유지해 나가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개인의 노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가는 공동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75년 만에 상속세법 개편 논의
1950년 제정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지돼 온 우리나라 상속세법이 75년 만에 개편 논의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그동안 상속세 체계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실제 상속받는 재산에 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이어져 온 만큼, 이번 개편은 제도의 현실화와 국민 수용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개편하려는 이유는
현행 상속세는 '유산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사망자가 남긴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구조로, 상속인이 실제로 물려받는 금액보다 더 큰 세금 부담을 질 수 있는 방식이다. 최고 세율은 50%에 달해 상속세 부담이 상당하다. 이처럼 전체 유산에 일괄적으로 과세되는 유산세 방식은 상속인 각자의 경제적 수용 능력과 무관하게 세금이 부과될 수 있어,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세금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따라 부과돼야 한다’는 과세 원칙에 비추어볼 때,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이다. 또한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현재 유산세 방식을 유지하는 국가는 OECD 24개국 중 한국, 미국, 영국, 덴마크 단 4개국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글로벌 조세 흐름에 부합하고, 조세 형평성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제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개편안의 핵심은 무엇?
정부가 발표한 상속세 개편안의 핵심은 과세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것이다. 유산취득세는 각 상속인이 실제로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개별적으로 세율을 적용하고, 기본공제도 상속인별로 적용되기 때문에 세 부담이 실질적으로 낮아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총 15억 원의 재산을 자녀 3명이 각각 5억 원씩 상속받는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전체 유산에 대해 세율이 적용돼 자녀 각각 약 8,000만 원, 총 2억 4,000만 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유산취득세 방식이 도입되면 상속인 각자에게 기본공제 5억 원이 적용되어 세금을 전액 면제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인적공제 체계도 전면 재설계했다. 현행 일괄공제는 폐지되고, 상속인별로 공제가 적용된다. 직계존비속은 1인당 5억 원, 형제 등 기타 상속인은 2억 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배우자의 경우 공제 한도를 기존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하여, 법정상속분을 초과하더라도 추가 공제를 허용하도록 했다. 또 배우자와 자녀 등을 합해 상속재산 10억 원까지는 비과세하는 최소 기준선도 설정되었다. 한편,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인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한 ‘쪼개기 우회상속’에 대한 방지 장치도 포함되었다. 정부는 사망자의 상속재산이 30억 원 이상인 경우, 제3자를 통한 우회상속이 적발되면 직접 상속한 것과 같은 수준의 상속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특례를 신설하기로 했다.
‘부자 감세’ 논란 있지만…
상속세 개편으로 인해 상속세를 실제로 납부하는 국민 비율은 절반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한다. 또 정부가 걷는 상속세 규모도 약 2조 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번 개편은 납세자의 실질적 부담 능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조정하려는 긍정적인 시도로 해석된다. 물론 이번 개편안은 아직 입법예고 단계에 불과하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상속세 개편을 둘러싸고 ‘부자 감세’ 논란 등 이견이 존재하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75년 만에 상속세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대원칙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이제는 조세 형평성과 국민 수용성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잡힌 제도 개선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원문출처>
FP저널 http://www.fpkorea.com/2014/return.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