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

▲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안보전략연구소장
북한이 핵 개발에 착수한 것은 6·25 전쟁 직후 김일성이 ‘핵 보유만이 공화국의 살길’이라 판단하고 소련에 6명의 과학자를 파견하면서부터였다. 1964년 중국이 핵 실험에 성공한 후에 마오쩌둥을 찾아 핵 개발 의중을 비치자, “중국은 대국 체면상 핵이 있어야 하지만 북한은 그럴 필요가 없다”라며 만류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6차례 핵 실험을 거쳐 현재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체적 평가다.
핵은 투발 수단인 미사일이 중요하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1970년대 중반 이집트 등 중동 국가에서 구(舊)소련의 스커드 미사일을 구매해 분해·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해 왔으며, 기존 미사일방어체제(MD)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나 변칙 기동 형태의 극초음속·전략순항 미사일 개발도 서둘고 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까지 완성된다면 그 파장은 가늠조차 어렵다. 미국이 자국민 안전을 포기하고 혈맹인 한국을 지켜줄 거란 기대는 낭만에 불과할지 모른다.
북한의 핵 개발 목적은 비대칭전력에 의존한 대남(對南) 전략적 우위 확보, 미국을 위협해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 관철, 내부 체제결속에 따른 정권의 안정적 유지다. 이를 위해 김일성 사후 수십만 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도 그 궤도를 한 번도 수정하지 않았다. 북한 핵은 김일성이 창시자이자 설계자, 김정일이 집행자, 김정은이 운용자로 3대에 걸쳐 진행된 혁명 과업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에 대응하고자 국제사회와 공조 하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북한의 ‘대화 따로, 핵 개발 따로’라는 이중전략과 온갖 기만·공갈·협박 술책에 속아 속수무책으로 일관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무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을 배제(코리아패싱)한 채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 군축 협상(스몰딜)에 나설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현실에서, 북한에 핵 인질이 되어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으로까지 치닫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핵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 수단은 핵뿐이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뎌낼 도리가 없고, 당장 핵무기를 생산할 인프라도 갖춰있지 않다. 그밖에 핵우산이나 전술핵 재배치 또는 잠재적 핵 능력 보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국제사회와 미국의 용인이나 협조 없이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문제가 최우선 순위는 아닐 것이다. 김정일과 직접 대화 등을 운운하고 있지만 협상가인 그의 화법을 생각할 때 섣불리 예단하지도 말아야 한다. 대신 경계해야 할 것은 설마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겠냐는 식의 ‘확증편향’이라 하겠다. 더욱 유념해야 할 일은 한미동맹만을 앞세워서는 실리주의자인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렵지만 해결 방안은 반드시 있다고 본다. 우선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력 아래 가용한 핵 카드를 동원해 대응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각하면서, 트럼프의 관심이 큰 K-함정과 같은 우리의 외교·안보 자산과 역량을 총가동해야 한다. 가치와 선악보다 국익과 힘이 지배하는 글로벌 대변혁기를 맞아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현실은 외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바로 그렇다. 더 이상 폭탄 돌리기는 곤란하다. 국민 모두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략적 접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에 속하는 나라다.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민족의 명운이 걸린 북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원문출처>
대경일보 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8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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