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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은의 정책과 혁신] 〈5〉속기사는 사라진다…녹취 공개 때문에.jpg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음성녹음을 글로 옮겨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 안구건조증이 있는 필자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모니터를 보고 타이핑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속기사가 사라질 위험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이런 앱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그 이야기가 아니다. 녹음 파일 공개 때문이다.

녹음 파일 공개는 그동안에 간간이 뉴스에 등장했다. 최근에는 명태균씨와 관련해서는 한 달여 주요 뉴스를 독점하고 있다. 갖가지 상황은 물론 음성의 당사자, 관련 내용이 메카톤 급이어서다. 구속된 이후에도 녹취 공개는 계속되고 있고, 아직 열리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듯 하다.

녹취 공개가 계속 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목적에 둔 사람들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기억이나 표현 전달로 부족한 신뢰감을 준다. 증거능력은 물론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해 주기까지 한다. 우리 말은 숨소리, 억양, 고저, 장단 등에 따라 감정상태나 의도 등에 대한 뉘앙스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글로 알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속기사다. 속기사는 정확한 기록을 위해 말 외에도 말하는 상황과 분위기,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 말투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경찰, 검찰 수사속기의 경우 진술자의 행동과 표정은 물론 진술 상황에서 표현되는 그림이나 도구까지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반면, 기자들의 보도는 요약을 해주는 장점은 있지만, 자체 편집과 취사선택 등으로 있는 그대로를 전달받는 데에는 장애물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걸 글로 전달할 수 있고 또 시민 입장에서 그걸 이해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녹음 파일이 뉴스를 장식하게 된 것은 의사결정의 투명성, 합리성과 관련이 있다. WEF나 IMD 등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합리성 항목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정부의 정책결정이나 인사 업무가 그런 영역을 차지했다. 국가기록물법에는 정부는 물론 공공기관까지 거의 모든 회의를 기록, 보관,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대 증원을 결정한 회의록조차 공개는 물론 작성되지 않았다고 했다가, 요약본으로 작성한 후 폐기했다는 장관의 답변까지 있었다. 장시간 논란 끝에 요약본 일부가 공개되는 것으로 그날 국회에서의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나라 기록 문화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도 유명하다. 중요한 결정은 공론화 과정이나 공개 석상에서 결정되기 보다는, 은밀한 환경에서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문화가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에 속기사가 발붙일 공간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사설 녹음기를 계속 켜야 할지 모른다.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은 아주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유산을 남겨야 한다. 영상 시대가 도래함을 넘어 만개했음에도 자막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중요한 결정은 투명해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원문출처>
전자신문 https://www.etnews.com/202411200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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