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막 내리는 대한극장, 사라지지 않는 잔상 [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jpg

한국 영화를 상징하며 서울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관, 대한극장이 66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이제 알았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황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극장 앞에는 펜스가 쳐져 있고, 공사 중이라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1985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나는 처음 3년을 서울 중구 필동에 살았다. 그래서 필동 주변의 거리가 바로 내 한국의 첫 풍경이다. 한국인 여학생과 함께 자취를 시작했는데, 살던 집에서 대한극장까지는 아마 걸어서 5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랄까!


막 내리는 대한극장, 사라지지 않는 잔상 [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2).jpg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당시 나는 영화를 자주 보러 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험이 끝나고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근처 시장을 간 기억이 난다. 단관극장 시절 대한극장의 공기는 지금도 느껴지는데, 일상과 구별되는 내겐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다.


1958년 개관한 대한극장은 국내 최초 70mm 초대형 스크린 시대를 열었고, 1962년 영화 ‘벤허’의 전차 액션을 보려는 관객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벤허 극장’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 밖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 ‘마지막 황제’ 등 대작을 주로 상영하며 영화 산업을 이끌었다. 미국 영화사 20세기폭스의 설계로 영화를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한 한국의 첫 번째 ‘무창(無窓)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내 친오빠와 같은 나이로 우리는 비슷한 시대와 역사를 살아온 셈이다.

길을 오가며 나는 극장에 걸린 커다란 간판 그림이 바뀔 때마다 한참을 올려다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극장 앞은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극장은 늘 내게 친근한 장소였다. 아, 그리고 1980년대 한창 시위가 많이 일어나던 때 눈물을 흘리며 그 앞을 지나간 일도 생각난다. 아마도 한국의 매운 최루탄 맛을 그곳에서 배웠을 것이다.

작은 골목골목에는 하숙집, 밥집, 술집, 인쇄소, 철물점 등이 그득해 신기롭게 보였다. 대한극장을 기점으로 남산, 충무로에서 퇴계로로 가는 거리, 인현시장, 중부시장, 명보극장, 청계천과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을 비롯해 종로까지가 내가 즐겨 걷는 곳이었다. 뜨거운 심장의 동국대 학생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만, 나는 혼자 거리를 걷는 것을 더 좋아했다. 500원 내고 동국대 학생극장을 다녔고, 500원짜리 국밥, 500원짜리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극장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지만, 그만큼 그때의 추억은 전부 극장이 있는 거리에서 이루어졌고, 모두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한국 영화에 빠진 계기는 당시 명보극장에서 본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였다. ‘씨받이’란 소재도 충격적이었는데, 강수연 배우가 연기한 옥녀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동선이 기가 막혀 그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남아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또한 국도극장에서 본 ‘서울 무지개’의 기억도 깊게 남아 있다. 이들 극장에서 나는 주로 한국 영화를 봤고, 혼자서 조조할인으로 봤다.

대한극장의 폐관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주변을 찾아 걸어보니 새로 들어선 건물과 가게가 있지만, 의외로 아직 남아 있는 자그마한 건물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옛 내음이 풍겨오는 듯해 살며시 마음이 놓였다. 더 걷고 싶었지만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 내리는 바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기에 필동면옥을 찾아 슴슴한 냉면 한 그릇으로 나의 착잡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지금 한국의 영화 산업이 위기라는데, 한편으론 영화 상영관의 위기가 아닐까? 코로나19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영화관이 많다. 한국에 오기 전 도쿄에서 자주 찾던 영화관이 이와나미홀(巖波ホ―ル)이다. 이곳도 2022년 7월 말, 54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피아라는 정보잡지를 한 손에 들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극장을 찾았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6시간이 넘는 인도 영화 ‘길의 노래’였는데, 그 후로 끝내 가지 못했다. 무척 그립고 많이 아쉽다.

젊음 때문에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과 함께 내 젊은 시절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준비하다 세운상가를 비롯해 일대가 모두 사라진다는 소식도 접했다. 오래된 도심, 기억의 장소들이 머지않아 일부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대한극장이 한국 영화의 역사로 길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원문출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924/130072747/1

List of Articles
Lis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홍보실 2022-10-07 71077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칼럼: 막 내리는 대한극장, 사라지지 않는 잔상 [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file

한국 영화를 상징하며 서울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관, 대한극장이 66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이제 알았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황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서경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본부, ‘게이미피케이션 – 진로 방탈출 프로그램’ 운영 file

체험형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흥미 UP! 서경대학교(총장 김범준) 대학일자리플러스본부는 9월 20일(금)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교내 유담관 L층 Co-working space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형 비교과 프로그램인 ...

서경대학교, 「2024년 찾아가는 인생나눔교실(수도권)」 기획사업 ‘찾아오는 인생부스’로 시민과 함께하는 멘토링 체험부스 운영 file

제1회 인문문화축제(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통해 인생나눔교실 예비 참여자 발굴 및 인문가치 확산 도모  서경대학교(총장 김범준) 문화예술센터(센터장 최은정)는 가을을 맞아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

[서경대 MFS] 송금에 특화된 미국의 은행 “Western Union” file

서경대학교 MFS(Mobile Financial Service) 연구회는 금융정보공학과 서기수 교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연구모임으로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핀테크시장의 흐름과 동향파악을 통해서 국내 금융시장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

서경대 2025학년도 수시모집 최종경쟁률 13.46대 1 전년 대비 ‘2.00%p 하락’ 실용음악학부 보컬전공 382.20대 1 ‘최고’ file

서경대학교는 13일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 마감 결과, 1,438명 모집에 19,358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13.4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경쟁률 15.46대 1보다 2.00%p 하락했다. 올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

서경대, 군사학과 수시 입학전형 체력고사 ‘국민체력 100’으로 대체, 출장 측정 실시 file

서경대학교(총장 김범준) 군사학과(학과장 채성준)는 2025학년도 수시 신입생 모집을 위한 특별전형 요소 중 그동안 자체적으로 실시해오던 체력고사를 국가 공인 ‘국민체력 100 체력인정서’ 제출로 대체하기로 했다. 청소년(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무대패션전공 학생들로 구성된 창작집단 ‘Apparel(어페럴)’, 전시 <B의 존재> 개최… ‘Apparel(어페럴)’ 팀장 변지우 학우 인터뷰 file

9월 20일(금)부터 9월 23일(월)까지 나흘간 뎁센드 2 갤러리에서 열려 서경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무대패션전공 학생들로 구성된 창작집단 ‘Apparel(어페럴)’이, 오는 9월 20일(금)부터 9월 23일(월)까지 나흘간 ‘B의 존재’를 ...

박재항 서경대학교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칼럼: 이타적유전자·박재항>9·11에 새겨 보는 테러리스트와 자유 투사 file

박재항 서경대학교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요즘 같아서는 기꺼이 그렇게 부를 사람들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2023년 1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 911테러 22주기를 맞아 성조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상대...

서경대학교 교수학습원, ‘2024학년도 S-Learning Contest (노트필기 공모전)’ 성황리에 개최. 뷰티테라피&메이크업학과 23학번 김효원 학우 ‘대상’ 수상 ···‘대상’ 수상자 김효원 학우 인터뷰 file

서경대학교 교수학습원(원장 정수정 교수)이 주최한 ‘2024학년도 S-Learning Contest (노트필기 공모전)’이 많은 학우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특색 있고 공감 가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는 등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효과...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칼럼: [임성은의 정책과 혁신] 〈3〉응급실 '뺑뺑이' 이제는 멈춰야 한다 file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암이나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119구급대의 응급환자 재이송으로 인한 사망자가 5년간 4000명에 달하고 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하고, 앞으로도 ...

Today
서경광장 > 서경 TODAY
서경대학교의
새로운 소식과 이벤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