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약 청정국이던 우리나라가 최근 청소년과 주부층에까지 파고드는 마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 10만 명 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일 경우 통상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되지만 2015년부터 30명 이상으로 올라갔으며, 2022년에만 마약류 사범이 총 1만 8395명으로 2018년 1만 2613명 대비 45.8% 증가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보통 마약 검거 사범의 10배 정도를 실수요층으로 추산하는 계산방식에 따르면 전체 수요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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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 반입되는 필로폰 50∼90%가 한국산일 정도로 마약 수출국이었지만 당국의 철저한 단속으로 그 오명을 벗었다. 그 이후 중국이나 동남아·중동 등지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중간 거점지로 각광을 받다가, 최근에는 주요 마약 수입 및 소비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마약은 국민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나라를 좀먹는 암적 요소다. 중국이 근세 들어 아편 때문에 국가가 병들고 급기야 열강에 짓밟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당시 청나라에 대한 무역 역조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을 이용한 제국주의 영국의 대외전략에 철저히 농락을 당한 결과였다.
오늘날도 마약 유통에는 국제범죄조직 못지않게 국가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중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2004년까지는 당국자에 의한 마약 유통 사건이 다수 적발될 정도로 외화벌이 사업의 일환이었으며, 현재도 중국과의 국경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필로폰이 생산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변 국가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당국자가 직접 연루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이를 숨기는 데 능숙해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통제 사회의 특성상 당국의 직간접적인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마약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경험 때문에 국내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사형까지도 불사하는 강력한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대신 이른바 ‘초한전’(Unrestricted Warfare)이라는 세계 제패 전략에 따라 마약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새로운 전쟁 개념인 초한전은 1999년 당시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 공군 대령이었던 차오량과 왕샹수이가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超限戰: 對全球化時代戰爭與戰法的想定)'을 출판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초한전의 일환인 ‘마약전’은 중국 공산당 또는 인민해방군이 관리하는 ‘흑사회’ 등 범죄조직이 먼저 서방 국가에 침투한 뒤 거기서 마약을 유통해 지역 사회를 망가뜨리고 이어 지역을 침략의 교두보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 서방 세계로부터 받은 수모를 되돌려 주겠다는 오기가 숨어있다. 이때 주로 이용하는 것이 순도가 98∽99% 수준인 데다 서방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해 수익이 높은 북한산 마약이라고 한다. 물론 당국의 비호를 받는 북한의 마약 유통조직에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며, 조선족이나 탈북자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 유통이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면서 검찰 내 마약 수사조직을 사실상 해체한 것을 꼽기도 한다. 실제로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은 대검찰청 마약 수사 부서를 없앴고,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마약 수사과를 조직범죄과에 통폐합했다. 2021년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행하면서 검찰의 마약 수사 대상도 축소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5월 대검에 마약·조직범죄부를 신설하는 등 마약 수사 역량을 문재인 정부 이전 상태로의 복원을 꾀하고 있으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남적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과 초한전으로 서방 세계를 공략하겠다는 중국이 손을 잡아, 돈도 벌고 대한민국의 내부도 붕괴시킬 있는 마약이라는 호재를 그냥 둘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마약 대책은 단순한 단속 수사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중대사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보건복지부 및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법무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적 ‘마약류 대책 협의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 또한 마약의 국내 밀반입 차단, 국내 공급조직 분쇄, 국내 밀매조직 추적 검거 및 전문적 단속 수사, 국제 공조수사 및 정보교환, 국제 마약공급 조직의 국내침투 차단, UN마약위원회 등 마약 관련 국제기구와의 협력 부분은 검찰·경찰·세관과 외교부 및 국정원에서 맡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에서 아시아·태평양 주요 국가들과 ‘아시아 마약정보협력체’ 출범을 주도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는 마약 문제를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바람직한 노력으로 보인다. 탈냉전 이후 다극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과거 군사력 위주의 전통적 안보 개념을 넘어 테러리즘, 산업스파이, 사이버테러와 같은 초국가적 안보 위협요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마약이나 국제범죄 역시 중요한 국가안보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학과장) yeomul@hanmail.net
<원문출처>
데일리안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2774066?sid=110